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한 가수 김민기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가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지난 2011년 2월 21일 극단 '학전'의 창단 2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고인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22일 공연계에 따르면 김민기는 전날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70~198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인 '아침이슬', '상록수'로 기억되는 '포크계 대부'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상경해 재동국민학교와 경기중·고를 졸업했다. 경기중·고 시절 미술반 활동을 했고,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이 잘 맞지 않았던 그는 그림보다 음악에 집중하게 된다.
고인은 1970년 친구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 8월 28일 고인의 대표곡인 '아침 이슬'을 발표한다. 이 곡은 양희은 1집에 수록되며 초창기엔 대중적으로도 널리 유통됐고, 1971년엔 '건전가요 서울시 문화상'도 받았지만, 이듬해 1972년 돌연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당시 고인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한 행사에서 '해방가'를 부른 것을 계기로 앨범은 전량 압수되고, 방송금지는 물론 본인 또한 즉시 연행됐다.
정권의 탄압으로 그의 노래는 통제 대상이 됐지만, 지금도 1970년대 청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친구' '아름다운 사람' '봉우리' '가을 편지' 등의 노래는 가슴 뜨거운 시절의 추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특히, 고인이 1978년 발표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노동자의 삶을 다룬 '노래극'으로 당대 노동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고인은 정작 싸워본 적 없다 몸을 낮추고, 자신은 투사가 아니라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대중이 그의 노래를 즐겨 듣는 것도 고인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내 노래가 필요 없는 시대에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음반으로 남기는 것도 내켜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3년, 이전까지 발표한 곡을 모아 넉 장의 앨범으로 구성된 '김민기 전집'을 발매했다. 이 음반의 선불 계약금으로 1991년 학전을 개관했다. 앨범 작업 당시 고인은 무척 힘들어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개관한 학전은 공연계뿐만 아니라 문화계의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은 문화예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제30회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을 받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동안 재정난이 누적된 학전은 지난 3월 15일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끝으로 개관 33주년 당일 폐관했다.
빈소는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2·3호실)에 차려졌다. 조문은 22일 오후 12시 30분부터 가능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유족은 전했다.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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