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실 SiLnD(Speech into Language and Data) 대표는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네덜란드에서 인공지능 관련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음성 인공지능(AI) 분야 유럽 내 한국인 과학 석학으로 꼽히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폭스바겐 등 굴지의 기업과 협업하며 음성 AI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조 대표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국인과학자대회를 계기로 잠시 귀국했다.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음성 AI의 발전이 AI가 사람을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AI만의 화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예상하며 한국의 AI 연구가 유럽을 상황을 관찰해야 하는 이유와 유럽과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언을 내놓았다.
어문학도에서 음성 전문가를 거쳐 AI전문가로 변신한 조 대표는 "지금까지는 AI가 사람의 발음과 어투를 흉내 냈지만, 너무 자연스럽거나 인간다워도 오히려 정보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다"면서 "앞으로 AI는 인간이 원하는 기본적인 정보를 쉽게 알리거나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화법이나 어투, 사투리 등이 섞인 언어가 아닌 AI만의 독특한 화법이나 유행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조 대표는 사람마다 발음이나 억양, 어투가 다르듯이 특정한 인물을 흉내 내는 방식으로는 음성 AI의 발전이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AI의 발전이 지나치게 이뤄지다 보면 인간의 언어 습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계와 대화가 늘다 보면 인간의 언어 활동에도 분명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음성언어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조 대표는 AI 연구와 관련해 미국만 지켜봐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조 대표는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유럽은 AI의 사회적 윤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이 AI 활용과 개발을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유럽이 AI의 윤리와 규제 분야에서는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의 AI 규제 동향을 살펴야 전체적인 연구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조 대표는 유럽내 대표 한인 과학자로서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한국이 세계 최대 다자 간 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됐지만, 연구과제를 따내기 위해 성급하게 도전하기보다는 현지 연구진과의 관계를 쌓아가며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했다.
조 대표는 "한국의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에 대해 현지에서는 큰 변화를 못 느끼고 있다. 기존에 한국과 관계가 있던 연구소가 아닌 곳들은 굳이 거리가 먼 한국과의 협력을 꺼릴 수 있다"면서 "거창한 협력을 먼저 하려 하기보다는 학회 참석 등을 통해 현지 연구진과의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연구과제에 대해 공유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본적인 관계가 있어야 연구 발주가 나왔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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