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연 많은 지자체, 느린학습자 실태조사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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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학습자는 지적장애와 비장애인을 구분 짓는 지능지수(IQ) 71~84 사이 집단에 속한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유아기를 거쳐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스며드는 데 애를 먹는다. 오해를 사는 건 기본이고, 눈치가 없다며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연착륙하도록 주변의 도움, 특히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지자체는 이들에 대한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17개 자치구가 제정한 느린학습자 조례에는 구청장이 지원계획 수립 시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실제 9개 자치구 구청에 확인해 본 결과 서초구청을 제외하고 실제 연구용역을 맡긴 사례는 전무했다. 현재 지자체들은 지능 검사 이론에 나오는 정규 분포 곡선을 토대로 전체 인구의 13.6%가 지능지수(IQ) 71~84에 속하는 느린학습자일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구청은 지자체 조례를 근거로 자치구 내 느린학습자를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도 실태조사를 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 묻자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지능지수만으로 이들을 가려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느린학습자를 명확히 판별할 기준이 부재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지자체 역량이 실태조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솔직한 답변을 전했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대상이 광범위해 일일이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내놓는 이유는 조금씩 달랐으나 결론은 하나였다. 조사 대상이 지나치게 많고, 지능지수 외에 이들을 선별할 마땅한 척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 지자체는 올해도 실태조사에 손을 놓는 분위기다. 2025년도 지자체 재정계획 수립은 지난달 마무리됐다. 투자심사를 거쳐 7월에 예산 편성은 사실상 끝이 난다. 그러나 강서구, 용산구, 양천구, 중랑구, 동대문구 등은 느린학습자 실태조사와 관련한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에도 정확한 인원 파악에 앞서 지원책부터 수립하는 방식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시책의 만족도가 높을 리 없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느린학습자 가정은 일자리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그러나 실제 지자체가 추진한 사업들은 마술 놀이, 사진 촬영 교육 등 본질과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지원책이 부재하다 보니 느린학습자 부모들은 자력구제로 난관을 헤쳐가는 실정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느린학습자 부모는 은둔형 외톨이가 된 자녀를 위해 대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다. 시책 수립과정에서 수혜 대상 규모와 이들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다.

모래밭의 바늘을 찾는 격이라 할지라도 바늘을 찾으려면 일단 모래사장에 발부터 들이밀어야 한다. 지자체 실태조사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신뢰도 높은 조사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실태 조사는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역량이 되지 않는다고, 조사 대상이 많다고 지자체가 손을 놓으면 느린학습자는 우리 사회의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가.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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