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를 위해 법이 필요했다...죽어야 끝나는 교제폭력[마감후]

친밀한 파트너의 강압적 통제
폭력·살해 행위의 전조증상
해외선 법으로 규율
사후대처 아니라 사전예방 방점
한국은 입법 논의 시작 단계

편집자주‘마감후’는 지면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뒷이야기를 온라인을 통해 밀도 있게 전달합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결과인 속보, 스트레이트, 단신 기사에서 벗어나, 그간의 스토리, 쟁점과 토론 지점, 찬반양론 등을 다양한 시각물과 함께 보여드립니다.
한나 클라크(31세)와 세 자녀 아알리야(6세), 라이아나(4세), 트레이(3세) 사진(출처=인스타그램 smallsteps4hannah 페이지)

한나 클라크(31세)와 세 자녀 아알리야(6세), 라이아나(4세), 트레이(3세) 사진(출처=인스타그램 smallsteps4hannah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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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퀸즐랜드에 살던 31세 한나 클라크는 세 자녀 아알리야(6세), 라이아나(4세), 트레이(3세)의 어머니였다. 2009년 로안 벡스터를 만나 2012년에 결혼했다. 남편은 한나 클라크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지만 입는 옷, 외출 시간과 장소, 만나는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통제했다. 친정 부모나 친구들과의 연락도 못하게 했다. 매일 성관계를 강압적으로 요구했고 한나를 ‘뚱뚱한 돼지’라고 불렀다. 자살한다고 위협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한나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증거가 될만한 물리적·신체적 폭력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2019년 12월 초에 남편과 이혼한 한나는 부모님 집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살았다. 2020년 2월 19일 한나는 세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차에 태우고 있었다. 갑자기 전 남편 로안이 차 조수석에 탔고, 한나와 세자녀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한나와 세자녀는 모두 살해됐고, 로안도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딸이 사망한 이후 한나의 부모인 수 클라크와 로이드 클라크 부부는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를 독립된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법운동을 펼쳐왔다. (출처=인스타그램 smallsteps4hannah 페이지)

딸이 사망한 이후 한나의 부모인 수 클라크와 로이드 클라크 부부는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를 독립된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법운동을 펼쳐왔다. (출처=인스타그램 smallsteps4hannah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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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정부 7월 1일 부터 강압적 통제 규제 법안 시행

딸이 사망한 이후 한나의 부모인 수 클라크와 로이드 클라크 부부는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를 독립된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법운동을 펼쳐왔다. 강압적 통제란 2007년 에번 스타크 럿거스 대학 교수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친밀한 관계에서 위협·협박·착취 행위 전반을 뜻하는 용어다. 구체적으로 ‘행방을 추적하고 감시’하거나 ‘모욕을 주고 비난’하는 것,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지인으로부터 고립’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한나의 부모는 강압적 통제행위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살해 행위의 전조증상이라며 이를 사전에 법으로 규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 사건에 큰 충격을 받은 호주 정부는 올해 3월 6일 형법 개정을 통해 강압적 통제를 범죄로 규정했다. 그리고 7월 1일 법률 시행을 앞두고 5월 1일부터 대국민 홍보를 시작했다. ‘사랑이 아니다. 강압적 통제다’(It's not love, It's coercive control)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게시했다.


호주 정부는 올해 3월 6일 형법 개정을 통해 강압적 통제를 범죄로 규정했다. 그리고 7월 1일 법률 시행을 앞두고 5월 1일부터 대국민 홍보를 시작했다. ‘사랑이 아니다. 강압적 통제다’(It's not love, It's coercive control)라는 제목의 영상은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게시했다.

호주 정부는 올해 3월 6일 형법 개정을 통해 강압적 통제를 범죄로 규정했다. 그리고 7월 1일 법률 시행을 앞두고 5월 1일부터 대국민 홍보를 시작했다. ‘사랑이 아니다. 강압적 통제다’(It's not love, It's coercive control)라는 제목의 영상은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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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례는 미국에도 있었다. 다섯자녀의 어머니인 제니퍼 둘로스가 2021년 남편에게 살해당했고, 제니퍼 마그나노도 이혼한 남편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두 피해자 모두 사망 전 가해자가에게 협박과 착취를 당했던 것으로 확인돼, 미국 코넷티컷 주는 ‘강압적 통제’를 규율하는 이른바 제니퍼법(Jennifer's Law)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살인 사건 유발요인을 검토한 결과 65%가 강압적 통제란 조사가 나오면서 2015년 중범죄법 개정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통제를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제니퍼 둘로스가 2021년 남편에게 살해당했고, 제니퍼 마그나노도 이혼한 남편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두 피해자 모두 사망 전 가해자가에게 협박과 위협, 착취를 당했던 것으로 확인돼, 미국 코넷티컷 주는 ‘강압적 통제’를 규율하는 이른바 제니퍼법(Jennifer's Law)를 만들었다.

제니퍼 둘로스가 2021년 남편에게 살해당했고, 제니퍼 마그나노도 이혼한 남편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두 피해자 모두 사망 전 가해자가에게 협박과 위협, 착취를 당했던 것으로 확인돼, 미국 코넷티컷 주는 ‘강압적 통제’를 규율하는 이른바 제니퍼법(Jennifer's Law)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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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살인 사건의 유발요인을 검토한 결과 65%가 강압적 통제란 조사가 나오면서 2015년 중범죄법 개정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통제를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영국에서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살인 사건의 유발요인을 검토한 결과 65%가 강압적 통제란 조사가 나오면서 2015년 중범죄법 개정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통제를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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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된 전조증상 있어...피해 입기 전 사전예방 필요성 대두

강압적 통제 행위를 입법으로 규제하자는 취지는 피해자가 심각한 폭력을 당하거나 사망하고 나서 이뤄지는 ‘사후약방문’식의 대처가 아니라, 전조 증상이자 유발 요인이 발생할 때 공권력이 개입해 더 큰 피해를 ‘사전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나왔다.


국내에서도 결별 과정에서 전 연인이었던 피해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교제살인의 공통된 전조증상으로 가해자의 협박·통제·위협·착취가 보고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가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거제 교제살인사건’의 경우 폭력과 집요한 스토킹 등이 있었다. 경기 하남에서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숨진 20세 여대생도 3주의 연애동안 노골적이고 집착적인 성관계 요구를 받았다. 여자친구를 감금한 뒤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고 폭행한 사건의 경우도 신체 위협과 착취 등의 강압적 통제 행위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감금돼 폭행과 강간을 당한 '바리깡 폭행 사건' 보도사진(출처=MBC 보도화면 갈무리)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감금돼 폭행과 강간을 당한 '바리깡 폭행 사건' 보도사진(출처=MBC 보도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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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에서는 강압적 통제 행위를 규제할 법적 수단이 현재로선 없다. 교제폭력이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처벌하는 법안인 ‘가정폭력 처벌법’의 경우 법률의 목적 조항 자체가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꿈꾸며’로 명시돼 있어 중재와 화해를 종용하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 처벌법은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돼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아 유야무야 되기 쉬웠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이성친구·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살해 사건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 위험에 처했던 여성은 최소 449명(살인 138명, 살인미수 311명)에 달한다. 자녀와 부모 등 주변인 119명을 포함하면 살인·살인미수 피해자는 568명으로 늘어난다. 교제폭력 신고건수도 2017년 3만6267건에서 2023년 7만7150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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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회는 관련 법 개정에 착수했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0일 ‘가정폭력 범죄 및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에 관한 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해 폭력의 정의에 ‘강압적 통제 행위’를 포함하고 반의사 불벌죄 적용을 배제하도록 했다. 아울러 상대방 일상을 과도하게 간섭하는 등 정서적·정신적 학대가 이뤄질 경우 이에 대해서도 수사·사법기관이 개입할 수 있게 했다. 22대 국회 첫 교제살인 대책 관련 발의 법안이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 현행 강요죄·협박죄와 중첩되는 부분,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처벌불원서가 남아있다는 점 등은 논의 과제로 꼽힌다. 강압적 통제행위를 범죄화한다는 조항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고, 폭력이 증명되지 않을 때 경찰이 개입한다면 공무집행 위법이 될 소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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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미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일관된 양식이 있어와 위험예측이 가능했다”면서 “그런데 관계의 ‘친밀함’ 혹은 ‘가정’이라는 테두리가 강조돼 예측가능성이 간과되는 일이 많았다. 이런 부분은 법개정을 통해 고쳐나가야 한다”고 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상대의 일상생활을 감시·비난하고, 명령과 지시를 따르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고, 행동과 생각을 통제하려는 행위를 불법화하고 수사·사법기관이 이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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