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에게 보낸 문자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슈로 떠올랐다. 디올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가 공개 사과 의사를 밝힌 문자메시지는 총선 참패의 책임 소재는 물론 윤 대통령과 한 후보 간 관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논란 초기 한 후보의 대응이 쟁점이었지만, 이후 유출 과정이 쟁점이 되면서 전대 결과는 물론 향후 정국에도 파문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야당에서는 여권의 분열 가능성까지 내다보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는 올해 1월 김 여사가 한 후보에게 보낸 문자가 재구성돼 공개됐다. 이 문자메시지에는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에게서 받은 디올백 등과 관련해 사과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구성된 문자에 따르면 김 여사는 한 후보에게 '대통령 후보 시절 사과를 했다가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진 기억이 있어 망설였다'면서도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 '한 위원장님의 뜻대로 따르겠으니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는 뜻을 전달했다. 텔레그램으로 전달된 이 메시지는 한 후보가 읽었지만 답장이 없었다. 이런 탓에 '읽씹'(읽고 씹음) 논란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이 시기는 한 후보가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직후였는데, 정국은 김 여사가 받은 명품가방(디올백)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한 후보가 꾸린 비상대책위원회 내부에서는 김 여사의 사과 등 책임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 등이 오갔다. 김 여사의 사과 논란이 수면 위로 오르자 한 후보는 이관섭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를 받기도 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갈등으로 치달았던 이 문제는 서천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과 한 후보가 만나는 것으로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를 취했다. 정치권은 막역했던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이 왜 이렇게 갈등으로 치달았는지와 관련해 이번 문자메시지 논란에서 이면이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악재로 여겨졌던 김 여사 관련 이슈가 정리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한 후보가 김 여사의 사과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선거 사령탑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정권의 황태자 취급을 받았던 한 후보는 법무부 장관 인선 등 일련의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런데 여사의 거듭된 문자메시지에 답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간적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았다. 이 정도면 '배신'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은 원희룡 후보와 나경원 후보 등은 이 문제를 계기로 총공세에 나섰다. 원 후보는 "총선의 민감한 악재였던 영부인 가방 문제에 대해 대통령실과 당내에서 논의하지 않고 대답도 안 한 채 뭉갰다"며 "선거 참패로 출마자, 낙선자, 지지자, 대통령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줬는가"라고 비판했다. 나 후보도 "한 후보가 구차한 변명을 계속하는 것 같다"며 "구차한 변명은 본인을 옹색하게 만든다. 명백한 한 후보의 잘못이고, 사실상 해당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한 후보는 해당 문자가 온 뒤 6개월이 지난, 전당대회 시점에서 이 문제가 불거진 배후를 문제 삼았다. 그는 "6개월이 지났는데 그 내용이 나오는 것은 노골적으로 내가 대표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라며 "문자 내용도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보낸 문자메시지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후보와 다른 후보 등은 문자메시지의 내용에 대한 해석을 두고서 이견을 보인다.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여사는 1월15일부터 25일까지 5차례에 걸쳐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문자메시지가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에 대해 해석이 갈린다.
한 후보 측은 김 여사가 보낸 메시지는 사과를 할 경우의 문제점 등을 쭉 나열한 뒤 '그런데도' 사과하라면 하겠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사과할 수 없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후보나 친윤계에서는 김 여사가 지속해서 사과 의향을 밝혔지만 무시당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사과하겠다고 한 것은, 결국 사과 의사를 밝힌 것으로 봐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이들은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는데 한 후보가 이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본다.
한 후보는 김 여사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누군가'가 전당대회에 개입하려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친윤 성향의 당협위원장들은 한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취소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두 사람 간 휴대폰 기록으로만 남아 있었을 대화 내용이, 흘러나오는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 등이 유출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한 후보 측은 공지를 통해 "한 후보가 김 여사 문자를 보여준 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 과정에서 일절 개입과 간여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특히 전당대회 과정에서 각 후보나 운동원들이 대통령실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십사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S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유출 경로와 관련해 "한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절대 안 되는 반한동훈 내지는 뭐 친윤계 인사 중의 하나"라면서 "한 후보를 낙마시키거나 문제를 계속 제기해 (한 후보 당선 시) 반대 세력의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야당에서는 일련의 갈등 양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정농단이 될 수 있다"면서 "여권의 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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