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 다 컸는데 집 안나가"…전 세계가 '캥거루족' 고민

"10년간 성인 자녀 부양" 美부모
2013년 30%→2023년 60%로 ↑
日에선 '중년 캥거루족' 문제까지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할 나이가 됐지만, 독립생활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캥거루족'이 세계 곳곳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취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집값 등 각종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 독립을 피하는 젊은 세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들이 이러한 상황에 불만족스러워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하면서 이를 두고 'Z세대의 끝없는 안전망'이라고 표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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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18~24세 응답자 중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980년 32%에서 지난해 16%로 반토막 났다. 최근 10년간 성인 자녀를 부양했다는 미국 부모의 응답률은 2013년 30%에서 지난해 60%로 늘었다. 일부 부모 응답자는 자녀와 함께 사느라 한 달 평균 1400달러(약 193만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밝혔다.

플로리다주 탬파에 거주하는 24세 청년 데이비드 누네즈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다. 통신비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식비 등은 본인이 부담하지만, 월세를 전혀 내지 않고 있다. 이 지역 평균 월세는 2000달러가 넘는다. 자신의 연봉인 3만3000달러로는 이 월세를 감내할 수 없다는 것이 누네즈의 설명이다. 그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단 걸 이해하는 가족이 있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통 18~19세쯤 되면 독립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평생 들어왔지만,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은 친구는 딱 1명뿐"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Z세대의 경우 교육 수준이나 정규직 취업 가능성은 이전보다 크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대학 등록금이 지난 20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현재 평균 3만7000달러로 비싸진 만큼 경제적으로 능력을 갖추는 시점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집값이 오르면서 독립을 하기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모니카 커크패트릭 존슨 워싱턴주립대 사회학 교수는 "청년 세대가 학교에 더 오래 머물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출 시점이 늦어지고 있다"면서 "일자리를 구하고는 있으나 자립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지금처럼 학자금 대출이나 공공 의료보험 등 정책적 지원이 없는 상황이라면 부모가 이러한 보호 역할을 하게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부모 세대는 본인들이 청년 시절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어 자녀가 캥거루족이 되는 것을 용인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미국의 X세대 부모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 금쪽 같은 자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데 있어 비교적 관대하다.


캥거루족이 이처럼 늘어나는 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황광훈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이 지난달 발표한 '청년패널조사로 본 2030 캥거루족의 현황 및 특징' 논문을 보면 국내 25~29세의 캥거루족 비중은 80% 내외였다. 30~34세 캥거루족의 비중은 2020년 53.1%로 이보다 적은 듯 보이지만, 2012년(45.9%) 대비 7.2%포인트나 증가해 캥거루족 증가를 주도했다.


캥거루족이라는 단어를 만든 일본도 1990년대부터 이를 사회 문제로 보고 해결책을 찾고자 고민해왔지만,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청년층 캥거루족 중 상당수가 중년이 돼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중년 캥거루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캥거루족 증가 현상이 벌어지는 사이 부모 세대는 노후 준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황 부연구위원은 "부모 세대의 경우 노동시장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중요한 시점에 자신들의 노후설계와 준비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고, 자식의 경제적 기반을 위해 시간적 비용적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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