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가 또다시 기습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리는 프리미엄 소비 수요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보복 소비 욕구가 시들해진데다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지갑이 얇아져 잇단 명품 가격 인상에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60만명이 모여있는 한 명품 커뮤니티의 회원은 '명품 가격 인상' 소식과 관련해 "품질이나 디자인이 월등히 향상된 것도 아니고 예전보다 못하다"며 "가격은 두세배로 올리는데 정떨어져서 사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다른 누리꾼들도 "이제 명품은 안녕해야 할 것 같다", "손절할 시기가 왔다"고 댓글을 달았다.
명품업계는 글로벌 가격 조정, 인건비 인상 등을 이유로 통상 1년에 한번, 연초 혹은 연말에 가격을 인상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가격 인상 주기가 더 짧아졌다. 최근 5년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의 가격 인상 횟수를 보면 많게는 연간 5차례 기습 인상을 단행하기도 했다. 특히 루이비통과 샤넬은 코로나19 유행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에 가장 많이 제품 가격을 올렸다.
에르메스의 경우 매년 연초 1차례씩, 한 자릿수 증가율로 가격 인상을 하는 패턴을 보여왔지만 2023년은 최대 10%를 인상했다. 샤넬은 2019년 3회, 2020년 2회, 2021년 4회, 2022년 4회, 2023년 2회 올렸다. 루이비통은 2019년 1회, 2020년 2회, 2021년 5회, 2022년 2회, 2023년 1회 올렸다.
올해 역시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 줄인상'은 계속되고 있다. 에르메스는 지난 1월 샌들 '오란' 가운데 도마뱀 가죽으로 생산된 제품의 가격을 기존 245만원에서 352만원으로 약 44% 인상했다. 이어 지난달 가든파티 30사이즈 컨버스 제품 가격을 기존 327만원에 404만원으로 23%가량 올렸다. 루이비통은 2월에 이어 5개월 만인 이달 2일 캐리올 PM 모노그램의 가격을 기존 340만원대에서 360만원대로, 포쉐트 메티스 이스트 웨스트 모노그램은 380만원대에서 410만원대로 인상했다.
이같은 '배짱 장사'가 가능한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사치재인 명품은 비쌀수록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특수도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2022년까지 '보복소비' 열풍으로 명품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늘면서 가격 인상에도 '샤넬런'(오픈 시간에 맞춰 샤넬 매장으로 달려가는 멋)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한국인의 명품 소비액도 전 세계 1등을 기록했는데,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을 325달러(한화 약 44만원)로 미국(280달러), 일본(210달러) 보다 크게 앞섰다고 분석했다.
최근 젊은층이 명품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것도 영향을 끼쳤다. 과거 명품 브랜드는 돈 많은 사람들만 찾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플렉스'(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 문화와 함께 젊은층이 명품 소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이 오르면 프리미엄이 더 강해지고, 이로 인한 차별화 효과도 발생한다"며 "더 비싸진 명품을 사면 상류층이라는 이미지가 더 부각된다고 생각해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들의 실적을 보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속에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공식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엔데믹 이후 명품업계 실적은 꼭지를 찍고 내려오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34% 감소한 샤넬코리아는 매출 증가율 역시 2022년 30%, 2023년 7%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디올 브랜드 한국법인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의 매출 증가율도 2022년 51%에서 2023년 12%로 꺾였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이 1조6511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1%가량 줄어든 2867억원, 당기순이익은 43% 줄어든 2177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로렉스 영업이익은 2022년 327억원에서 지난해 46억원으로 86%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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