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함께 술 마신 지인이 무단 운전하다 사고…차주도 책임 있어"

함께 술을 마시고 잠든 사이 지인이 몰래 차량 열쇠를 가져가 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더라도 차량 소유주가 운행지배나 운행이익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면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운행자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현대해상화재보험 주식회사가 차량 소유주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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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피고가 사고 당시 이 사건 자동차에 대한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완전히 상실해 운행자 지위에 있지 않았다고 판단, 원고의 이 사건 청구를 배척한 원심의 판단에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3조가 정한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자는 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19년 10월 23일 저녁 게임 동호회에서 알게 된 지인 B씨의 집 앞에 차를 주차한 뒤 인근 술집에서 새벽까지 각자 소주 2~3병 정도씩의 술을 마시고 B씨의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10시 15분경 A씨가 자고 있는 틈을 타 B씨가 A씨의 자동차 열쇠를 몰래 가지고 나와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2%의 주취 상태에서 A씨의 차를 몰다가 사고를 냈다. 당시 B씨는 술에 취해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다가 다시 후진하던 중 뒤에서 걸어오던 C씨의 다리를 자동차 범퍼로 충격하는 사고를 냈는데, 이날 사고로 C씨는 약 1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우측 발목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C씨는 현대해상에 무보험차상해 담보에 따른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고, 현대해상은 C씨에게 보험금 1억4627만원을 지급한 뒤 보험자대위에 따라 지급한 보험금과 이자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현대해상은 차주 A씨에게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운행자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을, 사고 운전자 B씨에게는 일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 A씨와 B씨가 공동하여 현대해상에게 C씨에게 지급된 보험금 1억4600여만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만 항소해 항소심이 진행됐는데 2심 법원의 판단은 1심 법원과 달랐다. 재판부는 "A씨의 과실이 중대해 B씨의 위와 같은 운전을 용인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거나 이 사건 사고 당시 피고차량에 대한 피고의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이 잔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 중 A씨에 대한 현대해상의 청구를 인용한 부분을 취소하고, 현대해상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2~3년 전 게임 동호회에서 만나 알게 된 사이로 가족 관계 혹은 특별한 친분 관계가 있다고 볼 사이가 아닌 점, 소주 2~3병의 술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A씨가 자신과 비슷한 양의 술을 마신 B씨가 6~7시간 뒤 몰래 자신의 차량 열쇠를 갖고 나가 운전할 것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등 이유를 들었다.


사고 발생 전까지 B씨가 A씨에게 A씨의 차량을 운전해보겠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던 점과 A씨가 사고 이후 B씨에게 1230만원을 받기로 하고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합의를 했고, 실제 사고 직후 B씨를 절도나 자동차불법사용 혐의로 고소하지 않은 점도 참작이 됐다. A씨가 3년 6개월 뒤에 고소한 것은 합의 내용과 다른 거액의 구상금 채무를 부담하게 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B씨를 고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지인이 차를 허락 없이 운전했을 때 차량 소유주에게 운행자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비록 제3자가 무단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내더라도 소유자가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기 어려울 경우 운행자책임을 져야 한다.


재판부는 "B씨가 무단운전에 이르게 된 경위와 무단운전에 걸린 시간, 특히 이 사건 자동차와 그 열쇠의 보관 및 관리상태, 운전자의 차량 반환의사 유무, 무단운전 후 소유자 등의 사후승낙 가능성 등에 비춰 보면, A씨가 이 사건 사고 당시 이 사건 자동차에 대한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함께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가 B씨의 집에서 잘 수 있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데다, A씨의 과실로 B씨가 자동차 열쇠를 쉽게 취득할 수 있었던 점, B씨가 자신의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짧은 시간 동안 운전했을 뿐이므로 자동차를 A씨에게 반환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A씨가 사건 발생 후 상당 기간이 지나서야 B씨를 절도, 자동차불법사용 혐의로 고소한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만약 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B씨의 무단운행에 대해 A씨가 사후에 승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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