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작고 허름한 건물. 1층에서 배건우씨(36)는 포장 전문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배씨네 부부가 카페, 맥줏집 등을 거쳐 분식점에 정착한 건 2년 전쯤 어린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다. 홀 관리가 따로 필요 없고 포장이 간편한 분식점이 아이를 돌보며 운영하기엔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배씨는 "이 동네가 거기서 거기다. 아내가 매장에서 포장하고, 내가 직접 배달하면 인건비를 충분히 아낄 수 있었다"며 "아내와 지난 2년간 최대한 지출을 줄인 결과 수입도 꽤 괜찮았다"고 말했다.
부부의 고민이 깊어진 건 최근 배달의민족(배민)·쿠팡이츠 등 배달 앱이 하나둘씩 '무료배달' 서비스를 출시하면서부터다. 지난 3월26일, 쿠팡이츠가 국내 배달 앱 3사(배민·쿠팡이츠·요기요) 가운데 처음으로 무료배달을 시작하고 이어 4월1일엔 '국내 배달 앱 시장 1위' 배민이 무료배달 전쟁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배달의민족을 기준으로 무료배달은 배민이 올해 초 출시한 신규 요금제 '배민1플러스'에 가입한 가게를 대상으로 적용된다. 기존에 배달의민족이 제공하던 '한집배달(한 번에 한 집만 배달)'과 '알뜰배달(한 번에 동선이 비슷한 여러 집을 묶어 배달)' 서비스를 합친 상품으로, 점주들이 주로 이용하던 정액제 요금제인 '울트라콜'과는 크게 세 가지가 다르다.
첫째, 일명 '깃발요금'으로 불리던 고정비용(개당 8만8000원)을 매달 지불하던 '정액제' 방식에서 전체 매출 가운데 매달 중개 수수료(7.48%·부가세 포함)를 떼어가는 '정률제' 방식으로 바뀌었다. 둘째, 배달비 총액에서 '점주 부담 배달비'와 '고객 부담 배달비'를 점주가 스스로 결정했던 것과 달리 배민이 지역별 배달비(서울 기준 3300원)를 고정했다. 셋째, 이전엔 점주가 가까운 거리를 직접 배달했으나 배민 배달 기사에게 모든 업무를 맡기게 됐다.
이런 변화는 배씨네 부부의 상황도 크게 변화시켰다. 무엇보다 정률제 방식으로 한 달 부담액이 크게 늘었다. 배씨네 부부가 대표 상품인 '마라로제 떡볶이 세트(1만7000원)'를 한 달에 1000건 판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기존 요금제(울트라콜) 사용 시 282만5000원이던 한 달 부담액은 신규 요금제(배민플러스)로 변경하면서 513만2600원까지 불어난다. 매달 추가 부담액이 230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특히 카드 결제수수료(3.3%)와 중개수수료(7.48%)를 합친 수수료가 56만1000원에서 183만2600원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200만원이던 점주 부담 배달비도 330만원으로 100만원 넘게 늘었다. 그러나 실제 배씨네 부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이전엔 배씨가 전체 주문의 절반가량을 직접 배달했으나 신규 요금제에선 이런 방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이를 두고 '일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라고 표현했다. 배씨는 "예전엔 1000만원 팔아서 200만원 가져갔다면, 지금은 1300만원 팔아서 200만원도 못 가져간다"며 "분명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늘었는데, 사정은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경남 울산에서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을 운영하는 또 다른 자영업자 이웅구씨(40)는 "1300만원을 팔아도 550만원 정도 입금된다. 여기서 재료비, 월세 등 다 빼고 나면 직원 월급도 안 나온다"며 "이렇게 가다간 자영업자들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배달 앱들이 앞다퉈 무료배달을 출시한 데에는 국내 배달 시장이 정체기를 맞았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매년 무섭게 성장했던 국내 배달 시장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2022년 26조5939억원이던 음식 배달 거래액은 지난해 26조4326억원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무료배달을 두고 배달 앱들이 고민 끝에 내놓은 '극약처방'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고물가 시대에 배달 앱 시장의 정체기는 예견된 일로, 위기 상황에서 나온 회심의 카드에 가깝다는 뜻이다. 또 단순히 배달 앱끼리 경쟁을 벌이려는 목적이라기보다 국내 배달 앱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데 진짜 목적이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배달 앱 시장 파이 자체가 작아지면 배달 앱끼리 서로 아무리 경쟁해도 나중엔 서로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며 "무료배달로 더 많은 고객을 유입해 매출 상승효과를 누리고 동시에 국내 배달 앱 시장 파이 자체를 키워 다 함께 득을 보려는 것이 진짜 목적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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