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탄원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해 재판에 넘겨지게 한 동료 교수에게 "제게 한 만큼 갚아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교수에 대한 보복 협박 혐의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앞서 2심 법원은 문자메시지 내용이 협박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반면, 대법원은 고지된 해악이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가 '협박의 고의'나 '보복의 목적'에 대한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법상 보복 협박 혐의로 기소된 충남의 한 사립대학교 조교수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이 사건 문자메시지 전송행위를 두고 협박죄에서의 '협박'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피고인에게 '협박의 고의'나 '보복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 또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대학교 조교수인 A씨는 2008년 같은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인 B씨의 소개로 강사를 거쳐 교수로 임용됐다.
A씨는 2016년 5월 B씨를 비롯한 동료 교수 8명에게 충남 금산군 소재 토지의 분양과 관련해 C씨를 소개했고, C씨는 해당 토지를 분양받으면 자신의 부담으로 토지를 개발, 매각해서 수익을 나눠 갖자고 제안해 B씨를 포함한 교수들로부터 2016년 4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토지 분양대금 명목으로 2억4705만원을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계좌로 입금받았다.
그런데 이후 C씨가 얘기한 대로 토지가 개발되지 않자 B씨 등은 2019년 '토지를 분양받았지만 개발행위가 진행되지 않아 분양대금을 편취당했다'며 C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C씨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20년 9월과 2021년 3월 수사기관에 'A씨도 C씨가 편취한 돈 중 1억3000만원 상당을 취득했다'며 A씨의 엄벌을 탄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결국 검사는 2021년 9월 A씨와 C씨를 사기 혐의로 함께 기소했다.
A씨는 본격적인 재판 시작을 앞두고 검사의 증거서류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B씨 등이 제출한 탄원서를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재판에 넘겨진 것은 B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첫 재판을 받고 온 2021년 10월 22일 저녁 A씨는 B씨에게 원망을 담은 문제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는 "교수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교수님 등이 작성한 탄원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너무 제가 인간관계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인간관계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O 교수, O 박사, OOO, OOO 등 제게 한 만큼 갚아드리겠습니다. 화요일 날까지 답장 부탁드립니다. 화요일 날 연구실로 오전 중에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11시간 뒤인 다음 날 아침 다시 비슷한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B씨에게 보냈다. A씨로부터 문자를 받은 B씨는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았고, A씨도 B씨의 연구실을 실제로 방문하지는 않았다.
이틀 뒤인 2021년 10월 24일 C씨는 B씨가 근무하는 대학교 교원인사과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B씨의 연구비 횡령 등 각종 사학비리를 제보했다. 사흘 뒤에는 다시 이메일로 해당 과장에게 B씨의 구체적인 사학비리 내용을 전달했다. A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 같은 B씨의 비리에 대한 C씨의 제보에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C씨 역시 같은 입장을 밝혔다. 실제 A씨가 제보에 관여한 사정도 드러난 게 없었다.
검사는 A씨가 자신에 대한 수사단서를 제공한 B씨에게 이 같은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낸 행위는 특정범죄가중법상 보복 협박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A씨를 재판에 넘겼다.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9(보복 범죄의 가중처벌 등) 2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하여 고소·고발 등 수사단서의 제공, 진술, 증언 또는 자료 제출에 대한 보복의 목적으로 제283조(협박) 1항의 죄를 범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며, 협박죄를 가중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한편 B씨 등이 C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A씨도 공범이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C씨가 사실은 토지에 대한 개발행위 허가를 받을 수 없고, 피해자들로부터 분양대금을 지급받더라도 다른 용도에 사용할 생각이었음에도, A씨와 공모해 피해자 등을 속여 위 2억4705만 원을 편취했다고 보고 A씨와 C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A씨와 C씨의 사기 혐의 재판을 맡은 1심 법원은 "분양계약에 따라 토지에 대해 대부분 계약서의 내용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고, 토지 분양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장래의 분할 내용에 따라 개발행위 허가의 조건인 특정 토지의 평균 경사도가 낮아질 가능성도 있어 개발행위가 불가능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2022년 3월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023년 10월 2심 법원은 항소를 기각했고, 2024년 3월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두 사람의 무죄가 확정됐다.
A씨의 보복 협박 혐의 사건을 맡은 1심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에서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피해자가 관련 사건에서 자신의 처벌을 탄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만취 상태에서 괴로움을 토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뿐 피해자를 협박할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이 사건 문자메시지는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로 보기 어렵고,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불과해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피고인의 상급자인 피해자에게 공포감을 일으켰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항변했다. 부교수인 B씨의 도움을 받아 강사로 채용된 뒤 조교수가 된 A씨가 B씨의 교수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만큼 B씨 입장에서 신분에 위협을 느껴 공포감을 가질 상황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또 변호인은 "설사 이 사건 문자메시지를 피해자에 대해 고소, 고발을 하겠다는 메시지로 보더라도, 이는 정당한 권리행사에 해당하므로 협박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같은 A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문자메시지의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법익에 어떠한 해악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고, 문자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문자메시지가 협박죄에서 말하는 해악의 고지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에게 협박의 고의를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문자메시지는 피해자의 고소에 따라 피고인이 기소돼 신분상 불이익을 입고 있으며 추후 교수직을 잃을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고인도 고소 등 적절한 방법을 통해 피해자로 하여금 교수직을 잃게 하는 등 동일한 보복을 하겠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를 했고, 피고인이 고지한 해악은 일반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록 A씨가 B씨보다 직급이 낮은 조교수였지만, 학교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지 않고도 학교 밖에서 고소 등 방법으로 충분히 B씨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신분상 불이익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피해자가 피고인의 상급자이고, 피고인이 학교법인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아니한 점 등을 주목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가할 수 없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고지했던 해악을 C씨를 통해 실행했다"고 덧붙였다. 1심의 판단과 달리 C씨가 B씨의 비리 사실을 제보하는데 A씨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A씨 측의 정당행위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설령 피고인이 말한 피해자의 비위 행위가 진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 사건 문자메시지의 전송은 피해자로 하여금 사기 사건 고소를 취소하게 할 목적 또는 피해자에 대한 보복의 목적에서 이뤄진 것일 뿐, 정당한 목적을 위한 상당한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시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협박죄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권리행사의 일환으로 상대방에게 일정한 해악을 고지한 경우에도, 그러한 해악의 고지가 사회의 관습이나 윤리 관념 등에 비춰 사회 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이거나 정당한 목적을 위한 상당한 수단에 해당하는 등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때에는 협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또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보복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9 위반죄의 행위자에게 보복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 또한 검사가 증명해야 하고 그러한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하는 엄격한 증명에 의해야 하며 이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와 같은 법리에 비춰 보면, A씨가 B씨에게 이 사건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행위를 협박죄에서의 '협박'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A씨에게 '협박의 고의'나 '보복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 또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문자메시지 내용이 추상적이고 조교수인 A씨가 자신의 상급자였던 부교수 B씨의 교수직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고 ▲B씨는 'A씨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후 학교에 자신에 대한 비위 제보가 접수됐고, 그것이 A씨의 의사에 따른 것으로 짐작돼 두려움을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그렇다면 B씨의 피해 감정은 A씨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후의 사정 등이 더해져서 비롯됐거나 구체화된 것으로 볼 여지가 많은 점 ▲A씨가 제보에 관여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사기죄 무죄를 확정받은 A씨 입장에서는 B씨가 제출한 탄원서에 담긴 B씨 등의 일방적인 범죄 의심 내지 평가, 엄벌 주장이 몹시 억울하고 서운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되는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사기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따라 A씨가 실제 교수직을 잃을 수도 있었던 점, 문자메시지를 보낸 시점이 C씨의 탄원서 제출로 기소된 사기 혐의 첫 공판기일이었던 점, 문자메시지가 높임말로 작성됐고 그 내용조차 추상적이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A씨의 주장처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상당 기간 친분을 맺어왔던 B씨에게 자신의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을 일시적·충동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이해할 여지가 많아 보일 뿐, '협박의 범의'나 '보복의 목적'에 따른 '구체적 해악의 고지'로 보기엔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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