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채권운용사 핌코를 공동 설립해 월가 '채권왕'으로 불려온 빌 그로스가 오는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시보다 채권 시장이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이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한층 심화시켜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진단이다.
26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그로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속적인 감세 정책, 재정이 많이 투입되는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면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포함한) 대선 후보자 중 더 약세적(more bearish)"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급증한 미국의 재정적자에 대해 바이든 현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8.8%로 직전년(4.1%) 대비 크게 늘었다. 막대한 재정적자는 연방정부의 이자 지출을 늘리고 통화가치를 하락시킬 뿐 아니라, 채권 금리를 급격하게 큰 폭으로 끌어올리는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앞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 재입성 시 2017년 통과시켰던 법인세 감면 정책 등을 영구화하겠다는 경제공약을 발표한 상태다. 초당적 싱크탱크 단체인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이에 따라 향후 10년간 4조달러의 비용이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로스는 "문제는 적자"라며 "연간 2조달러 이상 공급이 증가하면서 시장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등도 급격하게 늘어난 미국의 재정적자에 강한 우려를 표해왔다.
특히 채권왕 그로스의 발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경제, 금융시장을 잘 관리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것과 대치된다. 주요 외신은 오는 11월 대선까지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그로스의 발언이 '경제는 내가 더 낫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 문제는 최근 그로스가 자신에게 유명세를 안겨다 준 '토털리턴' 채권운용전략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로스는 이달 초 '그들은 그저 당신에게 채권 펀드를 팔아먹고 싶을 뿐이다' 보고서에서 "토털리턴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토털리턴은 듀레이션(투자회수 기간), 신용위험, 변동성 등에 적극적인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채권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한 전략이다.
이날 그로스는 미국 증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그는 투자자들이 지난해 24% 급등한 S&P500지수가 올해도 비슷한 상승세를 나타낼 것으로 봐선 안 된다면서 "기대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은 되돌아갈 수 있다"면서 "사람들이 10~15%를 예상한다면 이보다 더 적은 예산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S&P500지수의 상승폭은 지난 24일 종가 기준으로 11%대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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