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해외투자 역전이 3년 남았다."
A증권사 최고경영자는 최근 임원 회의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A사의 주식거래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들의 전체 투자 금액 중에서 해외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100분의 1 수준이었으나, 4년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확대했다. 2분의 1, 즉 절반을 넘기기까지 3년 정도 소요될 것이란 내부 분석을 토대로 임원들에게 해외 투자 역전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등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역외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투자 역전 상황은 비단 A 증권사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개인투자자의 해외증권투자 특징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부문의 해외증권투자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잔액기준)은 2019년 말 7.3%에서 2023년 말 20%로 상승했다. 금액으로 보면 771억달러(약 105조원)로 사상 최대다. 가장 최근 수치인 2024년 3월 기준으로 보면 838억달러 (약 114조원) 규모로 계속 늘고 있다.
개인들의 해외투자는 아쉽게도 건강한 투자가 아니다. 한국은행 분석 결과 포트폴리오 다각화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공격적이고 위험한 투자 성향을 보였다. 개미들의 해외투자 행태는 특정 종목에 대한 편중 및 레버리지 투자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이 보유한 해외주식투자는 테슬라, 애플, 엔비디아, 구글 등 대형 기술주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에 집중됐다. 특히 미국 주가지수 및 국채가격 변화 대비 3배의 변동성을 추종하는 ETF에 대한 투자 규모가 2020년 말 1억9000만달러(약 2600억원)에서 2023년 말 58억달러(약 7조9200억원)로 급속도로 증가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해외든 국내든 실질적으로 투자자들의 자산군 형성에 도움이 되는지를 관심 있게 봐야 한다"며 "해외 투자를 할 때 쏠림현상에 의해서 그냥 이슈가 되는 상품들에 대해서 집중투자를 하거나 급등락의 폭이 큰 해외시장에 대한 희망을 갖고 투자를 한다면 개인의 자산 증식에 도움이 되는 건강한 투자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 투자기관들의 밸류업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자본 시장에 대한 신뢰도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투자 대신 해외투자 비중이 늘면 우리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과 물량이 동시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 자본시장 스스로가 지금 신뢰를 못 받는다는 뜻이고 그것은 결국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지금 정책 방향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를 자문할 때 국내 투자자의 움직임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해외로의 자금이탈은 막을 수 없는 대세라고 전망했다. 국내 자본시장의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스페셜시추에이션 본부장은 "결국 국내와 해외의 지수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며 "투자자들로선 코스피에 10~20년째 투자했는데도 주가가 제자리고, 반면 미국 주가는 끝없이 오르는 데 실망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투자소득세 등 세금 문제가 확정이 안 된 것도 영향을 좀 받았을 것"이라며 "유예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수 있다. 또한 최근 나온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이 100% 자율적인 안으로 진행되다 보니 '별거 없네'라고 실망감을 느낀 투자자들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10년 동안 코스피는 박스권에 갇혀 있는데 해외 투자했던 사람들은 큰 이익을 얻는 모습을 개미들이 직접 봤다"며 "몇 초 만에 국내 주식을 팔고 해외주식으로 갈아탈 수 있을 정도로 해외투자 접근성이 좋아진 상황에서 환율이나 자본시장 상황 등 모든 면에서 국내 투자의 매력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A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는 "증시 수익률 측면에서만 냉정하게 본다면 개인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해외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라며 "국경 없는 투자 시대에 개인도 ETF 등으로 손쉽게 다양한 글로벌 자산에 투자할 수 있어 해외투자 선호를 쉽게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미들이 국내 증시에 공급하는 수백조 원의 유동성이 3년 내 절반 이상 해외로 증발된다면, 국내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는 비상이 걸린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개인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면 전체적으로 시장 볼륨이 작아지게 되고 제일 큰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자금 조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라며 "기업이 상장하는 이유가 자금 조달을 하고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인데 미국만 쳐다보고 국내 주식 투자를 안 하면 자금 조달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 많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다양한 투자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야 기업들이 자금조달 측면에서 안심할 수 있다"며 "기관투자자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기관들도 기본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유동성을 받쳐주는 상황에서 하는 것이라 기관들도 개인들이 떠나면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K-밸류업을 위해선 국내 개미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핀셋 정책'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