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대신 명품백"…유아동복 성장 미스터리[산업 덮친 인구소멸]

최근 10년간 신생아 수 반토막
유아동복 시장 30%넘게 급성장
텐포켓 현상…명품 유아동복 영향
국내 유아동복 브랜드는 철수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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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K씨는 매월 급여에서 20만원씩 적금을 든다. 자녀를 낳지 않은 딩크족인 그는 초등학생 조카를 위해 아내 몰래 돈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조카의 생일에는 평소 갖고 싶어하던 게임기 '닌텐도'를 선물했다. 2남 형제를 둔 K씨의 가족에서 아이는 형의 딸인 조카가 유일하다. 조카의 외가의 경우에도 1남1녀를 뒀지만 조카를 제외하면 아이가 없다. 조부모와 외부모, 부모 등 '식스포켓(1명의 자녀를 위해 부모와 조부모·외조부모 등 6명이 모두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현상)'에 이어 이모와 삼촌 부부까지 '텐포켓'이 K씨 조카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한국의 출생아 수가 급감한 가운데 유아동복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크게 늘면서 집안의 하나뿐인 아이를 위해 온가족이 지갑을 활짝 열면서다.

26일 한국패션시장트렌드연감에 따르면 국내 아동복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1281억원으로, 2009년 8470억원 대비 4000억원(33%)이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고물가로 인한 경기 위축으로 소비가 줄면서 2022년 1조1930억원보다 시장규모가 700억원가량 감소하기는 했지만, 지난 15년간 국내 패션 시장 규모가 같은 기간 40조원에서 45조원으로 12%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아동복 시장의 성장률이 훨씬 가팔랐던 것으로 확인된다.


책가방보다 명품백 드는 아이들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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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비결은 프리미엄 아동복. 한 명의 자녀를 위해 소비하는 '텐 포켓' 현상과 자녀를 최고로 키우고 싶어하는 'VIB(Very Important Baby)족' 이 등장하면서 명품 의류 제품 구매를 늘린 것이다.


실제 주요 백화점에선 최근 5년간 아동 명품 매출 신장률이 전체 아동의류 및 용품 매출 신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아동 매출 신장률은 34.8%인데 아동 명품 매출은 88.5%에 육박했다. 코로나19 특수가 반영된 결과이지만 이후 아동 명품 매출 신장률은 25%를 웃돌고 있다.

지난해 압구정 본점에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베이비 디올' 매장을 판교점에 '펜디 키즈' '몽클레르 앙팡'을 선보인 것이 매출 증가율을 높게 만든 것이다. 판교점은 최근 '베이비 디올' 매장도 추가로 열었다. 2022년 국내에서 키즈 명품을 가장 먼저 선보인 신세계백화점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신세계백화점의 키즈 명품 신장률은 2021년 29%, 2022년 24%, 2023년 15%로 집계됐고, 롯데백화점은 2021년 30%, 2022년 55%, 2023년 10%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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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보다 소비가 줄어들긴 했지만, 키즈 명품에 대한 선물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통상적으로 1분기(3월)에는 책가방 수요로 인해 국내 아동부문의 매출 신장률이 높게 나타나는데 올해는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 이마저도 명품 브랜드 수에 밀린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줄고 책가방보다 명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국내 부문의 매출이 커지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명품 브랜드들은 국내 럭셔리 키즈 제품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다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패션기업 한섬은 지난 5월 말에 선보인 브랜드 '키스(KITH)'에서 성인 패션을 물론, 키즈 의류까지 선보였다. 아빠와 엄마, 딸 혹은 아들로 패밀리 룩을 맞추려는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 자크뮈스도 올해 3월 국내에 키즈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다. 자크뮈스의 국내 유통을 전개하는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SSF샵과 오프라인 매장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등에 입점했다. 2007년부터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해 선보이는 아르마니키즈는 지난해 키즈 명품 수요 증가에 힘입어 온라인 매출 신장률이 43%에 육박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해외 명품 브랜드들도 한국에 키즈 사업 잘된다고 인식하고 키즈라인으로 제품군을 확장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브랜드의 아동복을 판매하는 플랫폼들의 성장세도 매섭다. 성인 패션 시장에서는 독특한 스타일의 국내 디자이너브랜드가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아동복 시장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가 선보이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키디키디'는 스트리트 브랜드나 디자이너 브랜드 아동복을 판매하는데 1분기 거래액 신장률은 40%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현대백화점 판교점,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는데 대기 줄을 만들어내며 육아맘(육아하는 엄마)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몸집 줄인 국내 유아동복 업체…문 닫은 브랜드로 속출

반면 국내 유아동복 시장은 출생아 수가 급감에 따라 지난 수십 년간 직격탄을 맞았다. 제로투세븐과 해피랜드, 아가방 등 국내 유아의류 기업 3사가 10년 동안 정리하거나 합친 브랜드 숫자는 12개에 달한다.


국내 출생아 수는 2014년 43만5000명에서 2020년부터는 27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2022년부터는 25만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가방은 오프라인 가맹점 사업을 과감하게 접는 결단도 내렸다. 아가방 관계자는 "코로나19 때 원가율이 높은 해외 부문을 정리하고 비용 군살 빼기에 초점을 뒀다"며 "체인점을 모조리 정리하고 백화점과 마트 등에 직영점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가방컴퍼니의 경우 2011년 2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이후 지속해서 실적 감소세를 겪었다. 2001년 1460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11년 2047억원으로 40%가량 불어났지만 출생아 수가 줄면서 2019년 매출은 1342억원까지 34%나 떨어졌다. 지난해 매출액은 1800억원대로 올라섰지만, 유아동복 기업이 줄줄이 철수한 여파와 브랜드 리뉴얼 등이 영향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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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방은 현재 '아가방'과 프리미엄 브랜드 '에뜨와' 두 가지를 주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인 2014년으로 돌아가 보면 아가방은 대표 유아 브랜드 '아가방'을 중심으로 유럽 명품 브랜드 '엘르', 실용성 위주의 브랜드 '디어베이비'를 운영했다. 브랜드 수는 이후 더 추가됐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한 '에뜨와', 유아용 매트 '디자인 스킨', 수입 아동복 편집숍 '쁘띠마르숑', 유아 스킨케어 '퓨토', 임부복 브랜드 '데스티네이션 마터니티' 등 10여개의 브랜드를 운영할 브랜드 사업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저출산 영향, 해외사업 부진으로 인한 매출 저하로 회사의 체력은 약화했고, 결국 코로나19가 찾아온 2020년 브랜드들을 합치거나 없애는 등 몸집을 줄이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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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랜드는 브랜드를 확 줄였다. 지난 10여년간 '압소바' '파코라반베이비' '크리에이션asb' '해피랜드' '해피베이비' 등을 운영해왔지만 2017년 크리에이션asb는 해피랜드로 흡수 통합됐고, 파코라반베이비는 2019년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위주로 재편했는데 현재 해피랜드 온라인몰에는 올라온 주력상품은 압소바와 해피랜드, 미피(MIiffy) 키즈 정도다.


지속적인 출산율 하락으로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제로투세븐은 2022년 8월 유아의류 시장에서 철수했다. 제로투세븐의 주요 브랜드로는 알로앤루, 포래즈, 알퐁소와 키즈 브랜드 섀르반이 있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들 브랜드가 만들어낸 매출은 회사 전체 매출의 50%에 육박했다. 제로투세븐은 국내에서 잘 되는 유아 브랜드를 들고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중국 내 매출 비중도 12%였다. 하지만 출산율 저하로 유아동복 시장 경쟁이 심화하자 패션사업 중단을 결정했고, 현재는 궁중 비책(매출 비중 60%)과 포장 사업(40%)으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한 아동복 회사 관계자는 “출산율 저하로 기업들 어려워진 시점에 코로나까지 터져 재고 부담이 크게 늘면서 아동복 시장 크게 망가졌다"며 "10년간 현금흐름이 악화면서 최대주주가 국외 자본으로 바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알로봇, 블루독, 밍크뮤, 리틀그라운드 등을 운영하는 서양네트웍스는 2013년 홍콩의 리앤펑그룹이 최대 주주로 바뀌었고 아가방은 2014년 중국의 랑시그룹에 인수됐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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