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이 본격화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 반도체 등에 사실상 수입 금지에 맞먹는 '폭탄관세'를 때리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당시 1차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양국 간 2차 무역전쟁의 포문이 열렸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자국 산업 보호를 통해 유권자의 표심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에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치가 전 세계 공급망을 흔들고, 중국의 보복 조처를 불러일으켜 글로벌 교역 시장 충격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14일(현지시간) 백악관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이유로 무역법 301조에 따라 무역대표부(USTR)에 핵심 전략산업에 대한 관세 인상을 지시했다. 이번 관세 인상 조치로 영향을 받는 중국산 수입품은 180억달러 규모다.
백악관은 우선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내년부터 종전 25%에서 100%로 4배 인상한다. 백악관은 "광범위한 보조금과 비시장적 관행으로 과잉생산 위험이 초래되면서 중국의 전기차 수출이 2022년부터 2023년까지 70% 급증했다"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100% 관세율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부터 미국 제조업체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품목별로 살펴보면 ▲철강·알루미늄 0~7.5%→25% ▲반도체 25%→50%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 7.5%→25% ▲리튬이온 비(非)전기차 배터리 7.5%→25% ▲배터리 부품 7.5%→25% ▲태양광 전지 25→50% ▲해상 크레인 0%→25% 등으로 관세가 인상된다.
미국의 무역법 301조는 미국 무역,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응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2019년 무역법 301조를 활용해 중국산 제품 전반에 걸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중국산 모든 제품에 대해 60% 폭탄관세를 부과한다고 예고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가 미국 유권자들에게 통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선거가 다가올수록 대중 무역에서 매파적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출범 초기만 해도 인플레이션 등을 우려해 관세율을 조정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상향하고 나섰다. 자국 산업을 보호해 유권자들의 표를 얻겠다는 포석이 깔렸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인상한 것도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주의 철강 노동자 표를 얻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관세 인상이 특정 산업에 국한된 조치라는 입장이다. 모든 제품에 관세 부과를 예고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미국이 국내 역량 강화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산업에 제한적으로 관세 인상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두 정당의 지도자(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들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강력한 장벽을 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며 "자유무역에 대한 초당적 합의를 무너뜨리려던 트럼프 전 대통령 혼자만의 노력이 이제는 컨센서스가 됐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선거를 앞둔 이번 움직임은 세계 양대 경제 간 마찰을 증가시킬 공산이 크다"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누가 중국에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짚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관세 인상 조처가 중국의 무역 보복을 불러일으켜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관측 역시 제기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에스와르 프라사드 선임연구원은 "이번 관세는 양국 간 산업정책 충돌의 정점이자 다가오는 미국 선거 시즌의 정점"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관세 인상이 중국의 보복 위험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미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상공회의소의 전 부사장인 마이런 브릴리언트는 "관세의 광범위한 활용이 소비자의 비용 상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무역과 관세에 있어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서려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