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커피 향기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우자 황금빛 크레마가 두툼하게 띄워진 에스프레소 한 잔이 완성됐다. 서울 을지로 골목 한쪽에 자리 잡은 '더데일리카페인을지로' 사장 주철홍씨(52)는 "지금이 제일 맛있습니다"라며 손님에게 연신 빠르게 마시길 권했다.
주 사장은 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커피의 생명은 향기"라며 "신선한 원두, 그리고 막 추출된 에스프레소에선 풍미가 가득한 크레마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차가운 음료에선 기름 성분인 크레마가 금방 꺼진다"며 "날씨가 더워지면서 손님들이 차가운 음료를 찾으시는데 갓 나온 크레마가 주는 커피의 풍미, 식감을 놓칠까 얼른 마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사장은 15년을 커피 업계에서 일했지만 을지로에 자리를 잡은 지는 이제 2년 차다. 그는 '맛있는 커피를 저렴하게 팔자'는 운영 철학을 가지고 문을 열었다. 더데일리카페인을지로는 '을지로 가성비 에스프레소'로 알려져 있다. '프로 맛집러'들 사이에서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구글·카카오맵에서 4.9점의 평점의 받을 만큼 만족도가 높다. 가격 역시 합리적인데 인근 소규모 로스터리 카페들의 에스프레소 가격은 4000원 선이지만 이 집의 에스프레소 가격은 1850원이다.
주 사장이 '저렴한 커피'를 고집하는 이유는 을지로의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그는 "창업하기 전에 을지로 근로자의 평균 급여가 사대문에서 가장 낮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 영세한 인쇄소가 많아서 그런 거 같다"며 "그런데다 직장인들의 소중한 점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제대로 식사할 유일한 시간인데, 커피가 저렴해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식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맛과 가격. 그의 카페 운영 전략은 분명하다. 원가 절감을 위해 8평 남짓의 작은 공간을 얻는 대신 커피 맛에는 과감하게 투자했다. 카페 인테리어 비용과 맞먹는 2400만원대 커피 로스터기를 들여 원두를 볶고, 가장 최적화된 압력이 설정된 1800만원대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언제나, 누구나, 매일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커피'라는 목표를 세운 만큼 커피 시장에 대한 연구도 꾸준하다. 주 사장은 현재 유행하는 커피 맛은 '신맛'이라며 이를 위해 커머셜 생두 중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것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주 사장은 "커피 업계에서 압도적 지위를 가진 스타벅스는 강한 로스팅으로 커피 맛을 냈지만 커피 브랜드 후발주자들이 과거에 없던 새로운 맛을 찾으면서 신맛이 부각됐다"며 "인텔리젠시아, 블루보틀 등 새로운 커피 브랜드는 스타벅스보다 더 좋은 커피콩을 썼다는 것을 어필하는 차별 전략을 펼쳤는데, 가벼운 로스팅으로 신선한 콩 자체의 맛을 강조하게 되면서 '신맛=고급 커피 이미지'가 굳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여기에 전 세계의 커피 산업을 주도하는 스페셜티커피협회(SCA)의 '좋은 품질의 콩으로 만든 맛있는 커피를 만들자'는 제3의 물결도 영향을 끼쳤다"며 "커피 재배 환경도 관련 있다. 아프리카 최대 커피 수출국인 에티오피아의 농가에선 아직 자연건조방식으로 생두를 가공하고 있는데, 생두를 겹쳐 말리는 과정에서 발효되면서 신맛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가 을지로에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 있었다. 주 사장은 "평소에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서서 마시고 가는 에스프레소바를 창업한 것도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선택했다"며 "하지만 일회용 컵에 대한 정부 정책에 혼선이 있었고, 일회용품을 쓰라는 손님들의 의견도 있었다. 결국 고민 끝에 테이크아웃용 일회용 컵을 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라며 토로했다.
을지로는 이날도 어김없이 인쇄물을 나르는 지게차와 삼발이가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통에 길거리가 분주했다. 주 사장은 굉음은 적응이 안 돼 들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면서도, 을지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옛것과 새것이라는 낯선 조합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공간"이라며 "새로 만들어지는 가게가 많다 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나이 드신 분들도 새것에 대한 저항감이 없다. 그런 게 을지로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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