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또 수난을 당했다. 최근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는 테러를 당한 이 소녀상에 이번에는 30대 남성이 일본산 맥주와 초밥을 올려놓았다.
29일 부산 동부경찰서 등은 지난 27일 오후 1시쯤 30대 남성 A씨가 동구 일본 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설치된 빈 의자에 스시 도시락을, 소녀상의 머리 등에 일본산 맥주를 올려놓았다고 밝혔다. 당시 A씨는 이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던 중 갑작스럽게 이러한 행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녀상 옆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누구나 앉으라는 취지로 제작됐다.
A씨의 돌발 행동 당시 현장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은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연합뉴스는 A씨가 지난 6일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철거'라고 적힌 검정 봉지를 씌운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6일 오후 5시30분쯤 30대 남성이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노역 노동자상에 '철거'라고 적힌 검정 비닐봉지를 씌웠다. 이 봉지 위에는 빨간 글씨로 '철거'라고 적은 마스크도 붙어있었다.
A씨는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에 소속된 인물로 추정된다. 이 단체는 지난 3일부터 오는 30일까지 평화의 소녀상 앞에 집회 신고를 한 상태다. 또 지난 3일에는 단체 소속 10여 명이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의 행동에 대한 처벌 가능 여부를 법적 검토 중이다.
소녀상의 수난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아직 마련되지 않아 유사한 행위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2020년 소녀상에 자전거를 철근 자물쇠로 묶어놓았고, '박정희'라고 적힌 노란색 천과 염주, 빨간 주머니가 걸린 나무막대기를 놓고 간 일도 있었다. 2017년에는 소녀상 인근에 '언제까지 일본을 미워할 것인가' 등이 적힌 종이가 붙은 폐화분을 테이프로 고정해 놓거나 소녀상 얼굴에 파란색 페인트를 칠하기도 했다.
최근 검정 봉지를 씌운 사건에 대해 경찰은 재물손괴나 모욕죄 혐의 등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혐의를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물손괴는 소녀상의 효용을 해쳐야 하고,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명예, 감정을 지닌 사람을 상대로 저질러야 적용할 수 있는 범죄라 이를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작가는 지난 23일 소녀상에 검은 봉지를 씌운 30대 남성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부산 동부경찰서에 고소했다. 김 작가는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의 모금으로 제작돼 부산 시민의 것이자 창작자인 나에게 작품 저작권이 있다"면서 '비닐봉지' 테러에 대해 "선진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예술에 대한 침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테러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인격권이 부여되는데 소녀상을 훼손한 것은 작가의 인격권을 무시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민주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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