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청년들에게 고립과 은둔은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찾아왔다. 성별, 나이, 직업에 따라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며 일상에서부터 고립감을 호소했다. 아시아경제는 1인 가구, 대학생, 가정주부 등 각자의 위치에서 일상 속 고립을 겪고 있는 이들을 만나 다양한 고립의 형태를 들여다봤다.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때 고립감이 가장 커지는 것 같아요. 대화 상대가 뚝딱하고 찾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럴 땐 혼자 유튜브 봐요. 사실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보는 게 맞겠죠."
서울 강남구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학원강사 황재현씨(가명·36)는 기자에게 요즘 울적한 날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학원강사 생활을 하면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만큼 일상은 분주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적막한 집에 홀로 앉아 있을 때면 그야말로 '세상엔 나 혼자구나'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만나 수다도 떨곤 했으나 서서히 약속 잡기도 어려워졌다. 문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면 지인들의 행복한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이 문득 든다고 했다.
황씨는 "SNS에 사진을 올린 사람이 항상 행복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그렇지만 그걸 보고 나면 상대적으로 혼자 사는 내 입장에선 고립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나처럼 1인 가구인 경우에는 개인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고, 또 나이가 많아지면서 진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해 고립감이 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황씨처럼 1인 가구는 사회적 고립 위기에 가장 취약한 대상자로 평가받는다. 1인 가구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한 우울증 등을 경험해 고독사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혼자 사는 청년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만 19~34세 청년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4%로 2000년(28%)에 비해 크게 줄었으나, 청년 세대의 1인 가구는 같은 기간 중 78만1000명에서 193만500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직장이나 학업 때문에 혼자 살게 된 청년들이 급격히 늘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데, '아, 내가 감기에 걸렸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종일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일이 없으니, 코 막힌 소리가 나는 줄도 몰랐던 거죠."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 재학 중인 오수연씨(가명·21)는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다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대화할 일이 없던 탓에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공인회계사시험(CPA) 준비 6개월 차, 요즘 오씨의 일과는 철저히 '혼자' 흘러간다. 오전 8시 반, 오씨는 일어나자마자 곧장 도서관으로 향해 공부를 시작한다. 점심 식사는 집에서 혼자 끼니를 때우고 도시락을 싸 와 저녁을 먹는다. 가끔 친구와 함께 식사하기도 하지만, 되도록 혼자 먹으려 한다고 했다.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는 일상이지만, 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눕는 날이 허다하다. 가끔 외로움이 심해질 때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 이야기를 하지만, 잠시뿐이다.
"나보다 먼저 시험 준비를 시작한 한 선배가 '인생이 어둡다'고 말하더라고요. 친구랑 같이 있어도 암울하다고요. 그 얘길 듣고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교내 학생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시험에 대한 불안감, 혼자 밥 먹은 얘기 하다 보면 조금은 후련해요."
대학가는 청년의 사회적 고립이 두드러지는 지역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연구진이 서울 20~39세 1인 청년 가구의 사회적 고립 정도를 분석한 최근 보고서에서 서울 중구 장충동·관악구 대학동·종로구 혜화동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종합 고립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가 청년들이 다른 지역 청년과 비교해 외부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등 사회적 고립 정도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경제적 빈곤이 영향을 미쳤다. 대학가에선 취업 준비와 시험공부 등을 이유로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각종 고시와 시험은 통상 졸업을 앞둔 3~4학년생들의 몫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엔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1~2학년생 사이에서도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임신·출산 등을 겪으며 경력단절로 고립 상황에 놓이는 청년들도 있다. 지난해 임신과 출산, 육아 등으로 직장을 그만둔 국내 '경력단절' 여성은 794만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를 거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듯한 외로움과 고립감이 한꺼번에 밀려들곤 한다.
지난해 3월 출산과 함께 육아휴직에 들어간 김다은씨(가명·29)도 한동안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고립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회사에서 점심 먹으며 직장 동료들과 수다 떠는 것이 낙이었던 그는 출산과 함께 대화 단절을 경험했다. 직무 특성상 교대 근무하는 남편은 새벽까지 일하느라 시간을 맞춰 대화하기 쉽지 않았고, 일하느라 바쁜 친구들에게도 먼저 연락을 건네기가 어려워졌다. 타지역에 사는 친정엄마와도 짧게 통화하는 게 전부였다.
김씨는 '누구나 다 엄마가 되는데, 혼자 유난스러운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 더 하소연하지 못하고 스스로 입을 닫았다고 했다. 혼자 바람을 쐬러 나가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를 든 직장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출산 전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며 성과를 내고 직장 동료들에게 인정받던 김씨였다.
"육아보다 힘든 게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남편은 출근했고 친구들은 일하죠. 잠든 아기 보면서 매일 혼잣말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아기 재우고 이유 없이 눈물도 줄줄 났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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