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힘으로 돈을 벌어서 살고 싶습니다. 부모님 등골 빼먹지 않고 편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20대 은둔 청년 가명 '신길'
"10년 넘게 은둔하는 기간에도 홀서빙 아르바이트, 주방 보조 등 단기 아르바이트는 꾸준히 해왔습니다." -30대 여성 가명 '뀨'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들은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도 돈벌이를 위해서는 집 밖을 나선다. 흔히 은둔형 외톨이의 표상으로 불리는 일본의 '히키코모리'와는 사뭇 다른 특성이다. 일본의 경우 은둔형 외톨이 대부분은 사회·경제활동을 단절·단념하고 수십 년씩 은둔 생활만 한다. 은둔한 채로 50대가 된 자식을 80대 부모가 부양하는 현상이 사회문제로 제기될 정도다. 정부의 여러 정책을 경험한 은둔 청년들은 영국, 일본 등에서 본따 만든 정책이 아닌 한국형 맞춤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아시아경제는 [청년고립24시] 취재 중 3월 22일 서울 은평구 소재 고립·은둔 청년 쉼터 '두더집'에서 은둔 청년 5명과 좌담회를 진행,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좌담회에 참여한 청년들의 이름은 두더집에서 사용하는 가명으로 표기했다.
좌담회 참가자 전원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 경험을 갖고 있다. 은둔 기간 월세를 내지 못할 때나 부모님에게 차마 손을 빌릴 수 없을 때 스스로 돈을 벌러 나간다는 것이다. 20대 은둔 청년 '3352'씨는 "두더집에 오기 전에는 콜센터에서 텔레마케터 일을 했다"며 "이후에는 주민센터에 찾아가 공고를 확인하고, 공공근로 등 그때그때 뜨는 지원 사업 등을 신청하면서 가끔 일을 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사회 복귀에 대한 의지가 있으신 것 같다"는 말에 참가자 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이들은 자기 계발과 취업에 대한 강한 욕구를 보였다. 신길씨는 정부의 일자리 프로그램과 더불어 자아실현을 위한 일을 병행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웹소설을 쓰고 있는데, 1월부터 유료구독 체제로 전환해 3월까지 6만원을 벌었다.
20대 남성 '한쇼'씨는 박물관 견학이라는 취미를 살려 곳곳의 박물관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병행하고 있다. 그의 제1 목표도 마찬가지로 취업이다. 3352씨도 "결국 지원을 받거나 하더라도 어디까지 자립을 위한 것이다. 내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최초로 진행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서 고립·은둔 청년 80.8%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도 '경제적 지원(88.7%)'에 이어 '취업 및 일 경험 지원(82.2%)'이 두 번째로 높았다. 구직뿐 아니라 경제활동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 편성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좌담회에 참여한 고립·은둔 청년들은 먼저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고립·은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구직 과정에서 연이은 취업 실패가 고립의 계기가 되고, 취직 이후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부적응이 이를 재고립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사다리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에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국민취업제도나 공공근로 사업 등 단기 일자리 프로그램이 있지만 고립·은둔 청년을 타깃으로 한 취업 제도가 없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한쇼씨는 "휴대폰 액세서리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다만 기간이 끝나면 경력도 못 살리고 그냥 내 일자리도 거기까지"라며 "경력도 이어가고 최종적으로는 취업과 연계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고립·은둔 청년들은 일자리만큼 일자리에 적응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이나 기관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적응을 돕는 사회적기업 '안 무서운 회사'가 대표적이다. 사무보조, 영상 편집, 마케팅 등 일반 기업의 업무와 비슷한 일을 맡겨 청년들의 적응을 돕는 곳이다. 대신 일을 빨리하지 못한다고 다그치거나 명령하지 않고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이들을 기다려준다.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드는 작업이다.
신길씨는 "일단 안 무서운 회사와 비슷한 형태의 플랫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적응 중에 발생하는 실수에서 덜 두려워할 수 있는, 실제 취업 전 단계의 안전장치가 가장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발신하는 정보를 하나로 묶어줄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고립·은둔 청년들 대부분 외부 활동이 많지 않다 보니 모든 정보를 온라인에서 찾게 된다. 하지만 채용 공고 등이 올라오는 홈페이지 '복지로' 등은 상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불편이 크다. 은둔형 외톨이 출신 청년이 청년재단과 손을 잡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자체 홈페이지 '솜사탕'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의 외로움·사회적 고립 위험 정도를 확인하세요'
https://www.asiae.co.kr/list/project/202405031429005132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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