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을 의지는 충분하지만 출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난임 인구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늦게 결혼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22만1272명이었던 불임 및 난임시술 이용환자 수는 2021년 25만2298명으로 늘었다. 2022년 기준 연간 출생아수가 약 25만명(통계청 기준)임을 고려할 때 이와 맞먹는 수치다.
이달 1일부터 시작한 보건복지부의 '임신 사전 건강관리(가임력 검사) 지원 사업'은 이 같은 현실에서 출발했다. 출산 의지가 있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만큼, 국민들의 가임기 건강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물론 난임의 주된 원인이 노화이어서 국가가 개인에게 빠른 출산을 촉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출산 의지가 있는 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려면 가급적 빨리 가임기 건강을 확인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세부적인 정책 설계와 디테일한 실무 작업은 입직한 지 3개월 차인 이수빈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사무관(행정고시 66회)이 도맡았다. 최근 아시아경제와 만난 이 사무관은 “그간 임신과 출산 정책은 주로 주산기(임신 직후부터 출산 전후까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자체 차원에서는 가임기 남녀에 대한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정책이 있지만,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정책 혜택이 달라지다 보니 중앙정부 차원의 (균일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임신 사전 건강관리 지원 사업은 임신을 희망하는 부부(사실혼·예비부부 포함)의 난소기능검사, 정액검사 비용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필수 가임력(생식건강) 검사인 난소기능검사(AMH)를 할 때 드는 비용을 여성 최대 13만원, 남성 최대 5만원 내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 검사들은 시중 병원에서 14만원(난소기능검사·부인과 초음파), 5만원(정액검사)의 평균 검사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대부분의 검사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
가임력을 검사하는 비용을 지원한다는 정책의 큰 그림은 짜여 있었지만, 세부 설계 과정에서 지원 범위나 액수 등을 결정하는 과정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기획재정부로부터 최종 승인받은 예산은 62억원이었다. 이 사무관은 해당 예산 안에서 실효성 있는 지원 액수를 설정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갔다. 결국 내부 논의 끝에 여성 검진 지원 비용을 10만원에서 13만원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무관은 “국·과장을 설득해 증액 필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3만원은 큰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전체 부부 숫자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증액을 한 것은 정책 참여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이 사무관은 의료기관들을 일일이 조사해 부인과 초음파 검사는 7만원, 난소기능검사는 7만원 선으로 검사 비용이 형성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합쳐서 약 14만원이 들었다. 이 사무관은 “만약 여성의 검진비를 10만원만 지원하게 되면 진찰료 등을 포함해 여성은 개인이 5만원 정도를 추가로 부담해야 했다”면서 “검사 참여도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책인데 개인이 추가적인 비용을 5만원 정도 더 부담해야 한다면 검사 참여율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재원상으로도 증액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 사무관은 각 지자체의 모자보건사업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도 진행했다. 각 지역의 신혼부부가 어느 정도인지, 아이들이 얼마나 태어나는지 등을 확인했다. 촘촘한 확인 결과 서울시를 제외한 16개 지자체에서 수요가 약 6만5000쌍 정도 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사업 초기에 예상했던 규모(8만2000쌍)보다는 적은 예상치였다. 예산상으로도 충분히 증액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가임기 남성의 참여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적 고민도 적지 않았다. 전체 난임 인구 가운데 약 40%가 남성이지만 난임전문병원을 찾아와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여성이 95%, 남성이 5%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사무관은 “여성들은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익숙한 반면, 남성들은 병원에서 정액검사를 받는 것을 낯설어 한다”며 “대부분 아내에게 이끌려 난임전문병원에 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남성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부부 단위로 검진을 받을 때만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했다. 이 사무관은 “하지만 정책 조건이 많아질수록 참여자들이 불편한 점을 고려했다”면서 “고민 끝에 (특정한 조건을 두지 않고) 검진비를 지원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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