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누가 뭐래도 양극재다. 중요한 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다. 리튬과 코발트, 니켈, 망간, 알루미늄 등을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지금은 리튬이온이 대세가 됐지만, 나트륨(소듐)이나 황이 향후 차세대 양극재로 주목받고 있다.
반대로 아직까지 단 하나의 원료로만 만드는 소재가 있다. 바로 음극재다. 그리고 음극재에 쓰이는 소재는 흑연이다. 리튬 등 금속계 음극재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구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가격 면에서 흑연이 압도적인 강점을 지니고 있어, '음극재=흑연'이란 공식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서 흑연 공급망 확보에서부터 차세대 음극재 소재 개발을 둘러싼 각 나라의 패권 쟁탈전은 양극재 개발 경쟁보다 뜨겁다.
국내에서 음극재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곳은 포스코퓨처엠 이다. 제철소 고로처럼 고온에서 강한 내구성을 지닌 소재인 내화물을 만들던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201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음극재 사업에 진출했다. 포스코퓨처엠이 양극재 회사인 포스코ESM을 합병한 것이 2019년으로, 포스코퓨처엠 배터리 소재 사업의 첫 시작은 바로 음극재였다.
음극재는 이차전지에서 양극재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면서 외부회로로 전류를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며, 그 성능에 따라 이차전지의 충전 속도와 수명이 결정된다.
음극재의 원료가 되는 흑연은 순수 탄소로 이뤄진 광물로, 높은 내열성과 전기전도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규칙적인 층상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리튬이온을 저장하기에 용이하다는 특성 때문에 음극재 소재로 활용된다. 현재 흑연을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 모잠비크, 브라질 등인데, 중국에서 만드는 흑연 물량이 세계 물량의 80%가 넘는다.
자연에서 채굴하는 천연 흑연과 달리 제철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코크스, 피치 등에 고열을 가해서 만드는 인조흑연도 있다. 천연흑연에 비해 낮은 밀도와 전기전도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반복적인 충·방전에도 결정 구조 변화가 작아서 천연흑연보다 수명이 2~3배 길다.
특히 인조흑연은 매장 지역에 의존해야 하는 공급망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에 많은 나라와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아직 음극재 소재인 흑연을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22년 기준 2억4100만달러 상당의 이차전지 음극재용 인조흑연과 천연흑연을 수입했다. 이 중 94%를 중국에서 들여올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중국 현지 사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게 약점이다.
지난해 중국이 흑연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공급망 다양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배터리 기업들은 독자적인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은 2025년부터 호주 흑연전문 업체 시라(Syrah)사와 천연흑연 2000t을 공급받을 예정이며, 호주 배터리 소재·장비 기업 노보닉스와 인조흑연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다. 삼성SDI 도 시라와 2026년부터 연간 최대 1만t의 천연흑연 음극재를 공급받는다는 계획이다.
SK 온도 미국 음극재 파트너사 웨스트워터 리소스로부터 2027년부터 천연흑연을 공급받는다. 시라와 천연흑연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우르빅스사와도 음극재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세종에서 7만4000t의 천연흑연, 포항에서 8000t의 인조흑연 음극재를 양산하고 있다. 포항의 경우 인조흑연 생산 능력을 연내 1만8000t까지 확대할 예정이며, 2030년까지 연 37만t까지 늘린다. 또 실리콘계와 리튬메탈 등 차세대 소재도 연구 중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실리콘 음극재를 흑연의 대체재로 주목하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 음극재보다 단위당 용량이 크고,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재 가운데 2022년 기준 73%가 흑연만 사용했으며, 실리콘을 포함한 음극재 비중은 27%에 그쳤다. 많은 배터리 기업들이 실리콘 음극재로 대체하는 추세에 따라 오는 2035년에는 흑연 음극재 비율이 53%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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