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편의점 홍보맨이 쓴 ‘어쩌다 편의점’<4>

편집자주편의점을 흔히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라고들 한다. ‘자본주의 DNA를 갖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의 상업 인프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제시하는 소비주의 사회의 첨병’ 등이 편의점 하면 떠오르는 차가운 속성들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답고 애틋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늘 가까이에 있지만 그다지 별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의점이라는 세계를 경쾌하게, 때론 진중하게 묘사한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는 그 흔한 편의점의 이면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향기가 묻어 있고, 문명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다. 글자 수 93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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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빈곤을 도와주는 건 한도 끝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무리 측은지심이 들어도 나의 생계로 폐지 줍는 할머니의 생계를 책임질 순 없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관심이 보다 건실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편의점 할머니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중략)


편의점은 매일 물건이 들어오고 빈 박스가 나오기 때문에 폐지를 줍는 노인분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폐지를 쌓아둔 자리에 ‘폐지 들고 가시는 분 있습니다’라는 안내문까지 붙여놓고 지정제로 어르신들을 챙겨 주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것이 그들의 삶을 연명하게 하는 매우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 그 배려의 마음 씀씀이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꽤 많은 점주님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위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도시락과 먹을거리들을 선뜻 내어주시곤 한다. 오래 두면 음식이 상하니 빨리 드시라고, 또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찾아오시라는 상냥한 인사말도 잊지 않는다.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을 먹을 것으로 덜어주는 일차원적인 방식이지만 그 어떤 정책보다도 훌륭한 맞춤형 복지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생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따뜻한 편의‘정(情)’이리라.

편의점 앞에서 가난이라는 삶의 무게를 느끼고 나서 최소한 할머니가 걱정, 부담, 눈치 없이 밥 한 끼나마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돌돌한 학자들은 취약계층의 빈곤에 대해 근본적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지, 부의 재분배, 아니 좀 더 단순히 말해 우리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관점부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유철현, <어쩌다 편의점>, 돌베개,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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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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