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빈곤을 도와주는 건 한도 끝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무리 측은지심이 들어도 나의 생계로 폐지 줍는 할머니의 생계를 책임질 순 없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관심이 보다 건실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편의점 할머니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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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매일 물건이 들어오고 빈 박스가 나오기 때문에 폐지를 줍는 노인분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폐지를 쌓아둔 자리에 ‘폐지 들고 가시는 분 있습니다’라는 안내문까지 붙여놓고 지정제로 어르신들을 챙겨 주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것이 그들의 삶을 연명하게 하는 매우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 그 배려의 마음 씀씀이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꽤 많은 점주님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위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도시락과 먹을거리들을 선뜻 내어주시곤 한다. 오래 두면 음식이 상하니 빨리 드시라고, 또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찾아오시라는 상냥한 인사말도 잊지 않는다.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을 먹을 것으로 덜어주는 일차원적인 방식이지만 그 어떤 정책보다도 훌륭한 맞춤형 복지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생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따뜻한 편의‘정(情)’이리라.
편의점 앞에서 가난이라는 삶의 무게를 느끼고 나서 최소한 할머니가 걱정, 부담, 눈치 없이 밥 한 끼나마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돌돌한 학자들은 취약계층의 빈곤에 대해 근본적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지, 부의 재분배, 아니 좀 더 단순히 말해 우리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관점부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유철현, <어쩌다 편의점>, 돌베개,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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