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인사를 후원회장으로 모시면 공천에 유리할까. 20일 아시아경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지난 11일 기준)된 예비후보자 후원회를 전수 분석한 결과 야당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여당에서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후원회장이면 공천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가장 많은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은 인물은 이 대표의 멘토라 불렸던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 대표와 이용득 전 의원 등이 각각 8명의 예비후보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 외에도 민주당의 경우 다선 중진 의원인 김두관(4명)·우상호(4명)·우원식(4명)·정청래(6명) 의원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6명)와 같은 원로급이 주로 후원회장을 맡았다. 국민의힘의 경우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안 전 대법관이었다. 그는 6명의 후원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에서는 공천을 앞두고 이 전 원장의 후원회장 문제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측근인 이 전 원장이 ‘친명 마케팅’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관위에 후원회 대표자로 이 전 원장을 신고한 12명 가운데 공천을 받은 후보는 전남 고흥군보성군장흥군강진군의 문금주 예비후보와 청년 전략 특구로 지정됐던 서울 서대문구갑의 김동아 예비후보 2명뿐이었다. 경기 화성시을의 진석범 예비후보와 경기 용인시정의 이헌욱 예비후보, 전남 영암군무안군신안군의 천경배 예비후보는 경선에 올랐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반면 진짜 위력을 발휘한 건 이 대표를 후원회장으로 둔 후보들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직접 인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영입을 주도했던 이 대표는 일부 후보들의 경우 후원회장을 직접 맡아 지원에 나섰다. 신고된 내용만으로 파악하면 이 대표는 예비후보 8명의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 이 가운데 7명이 공천을 받았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전략공천이나 단수공천을 받은 후보도 있다. 당내 경선을 치른 예비후보들은 이 대표가 후원회장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가령 인천 부평구의 박선원 예비후보와 인천 남동구의 이훈기 예비후보, 경기 의정부시갑의 박지혜 예비후보 등의 경우 당내 경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원회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렸다. 박선원 후보는 경선이 시작되기 직전 이 대표가 후원회장인 사실을 알리고, ‘이재명 후원회장과 함께’라며 나란히 찍은 사진 등도 공개했다. 이훈기 후보도 SNS에 "이재명 당 대표자께서 이훈기의 후원회장이 되어주셨다"고 알린 뒤 당내 경선기간 홍보물 등에도 최상단에 이를 알리며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박지혜 후보 역시 ‘인재 영입 1호’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 대표를 후원회장으로 모셨다고 SNS를 통해 알렸다.
이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았음에도 패한 예비후보는 충북 청주시청원구에 도전한 신용한 예비후보가 유일하다. 하지만 신용한 예비후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송재봉 예비후보의 후원회장도 이 대표였다. 사연은 이렇다. 신용한 예비후보는 지난 5일 SNS에 "이재명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아 주셨다"고 알렸다. 하지만 경쟁 후보인 송재봉 예비후보 쪽에서 반발하고 나서자 신용한 예비후보가 송재봉 예비후보의 후원회장도 이 대표가 맡아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이 대표가 경선 후보 양쪽 모두의 후원회장을 맡게 됐다
이 외에도 이 대표는 김용만(경기 하남시를)·노종면(인천 부평구갑을)·황정아(대전 유성구를) 예비후보와 같은 영입 인재들 후원회장도 맡고 있다.
당내 정치인이 여러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에서는 안 전 대법관 정도가 눈길을 끌었다. 앞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나섰다 낙마하고,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도 나섰던 안 전 대법관은 이번에 국민의힘 소속 예비후보 6명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 가운데 4명이 공천을 받았다.
경기 고양시병의 김종혁 예비후보와 경기 용인시갑의 이원모 예비후보, 서울 중랑구의 이승환 예비후보, 충남 천안시갑의 신범철 예비후보 등은 전략공천 또는 단수공천을 받았다. 다만 안 전 대법관을 후원회장으로 뒀음에도 경기 의정부을에 도전한 정광재 예비후보와 경기 구리시의 전지현 예비후보는 경선에서 이형섭 예비후보와 나태 근 예비후보에 각각 패했다.
후원회장은 현대 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한 인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담고 있지 않을까.
지난 12일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개혁신당 소속으로 류호정 예비후보(분당 구급) 후보 후원회장을 맡은 사실을 소개하며 "젊은 세대 정치인들의 분투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후원회장을 맡았다"며 "늙으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하던데 그 말대로 하려 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후원회장은 이렇듯 단순한 정치인의 후견을 넘어 인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뜻하기도 한다. 가령 인천 계양구에 도전한 원희룡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은 축구선수 출신인 이천수씨가 맡았다. 이천수씨는 원희룡 예비후보의 선거를 곳곳에서 돕기 위해 거리 인사를 다니다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음을 알리며 "87년 질서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미래는 이미 성장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선거 이후) 87년 질서를 붕괴시키고 장 의원 같은 넥스트 가치 존재들이 더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향후 10년간 더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후원회장을 계기로 앞으로 10년의 연구 방향을 잡아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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