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식당 '종로집'에서 만난 이병훈씨(56)는 "이전에는 방에서 가스버너를 이용해서 밥을 해 먹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 번 식당에서 와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면서 "신경 써서 만든 음식을 먹는 것도 좋고, 식당 직원들과 대화도 할 수 있어 지금이 훨씬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은 서울시가 쪽방촌 주민들의 하루 한 끼(8000원) 식사를 지원하기 위해 지정한 '동행식당' 중 한 곳이다. 2022년 8월부터 동행식당에 참여해 온 종로집 사장 박명숙씨(65)는 "어려운 분들을 위해 참 취지가 좋은 정책인 것 같다"면서 "단골들의 표정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소외된 주민들을 위해 운영 중인 동행식당·동행목욕탕·동행스토어(온기창고)가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 시내 5대 쪽방촌(창신동·돈의동·남대문로5가·동자동·영등포동)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낙원동에 위치한 한 목욕탕도 쪽방 주민과 지역 상권 간 상생 모델로 주목받는 동행목욕탕이다. 지난해 3월 한미약품의 후원으로 시작된 동행목욕탕 사업은 매달 목욕권 2장(1~2·7~8월은 4장)을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동행목욕탕 8곳을 이용한 쪽방 주민은 2만2777명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1898명이 이용한 셈이다. 이 가운데 13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만족한다는 답변이 96.1%에 달했다. 목욕탕을 찾은 주민 민경하씨(59)는 "집에 샤워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은 자주 씻기가 어렵다"면서"동행목욕탕이 생겨 따뜻하게 씻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동행목욕탕보다 앞서 2022년 8월부터 운영 중인 동행식당도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동행식당은 쪽방촌 주민에게 선정된 식당에서 하루 1끼(8000원)를 식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동행식당이 쪽방촌 주민에게 제공한 식사는 총 64만2080끼로 하루 평균 1759명(1일 1식 기준)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동행식당 이용자 17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96%가 만족감을 표했다. 동행식당 사업주의 만족도도 5점 만점에 4.53점으로 높았는데, 그 이유로 가장 많은 45.5%가 '보람 및 돕는 즐거움'을 꼽아 '매출 증대'(43.6%)를 앞섰다.
주민이 부여받은 포인트로 자신의 수요에 맞는 후원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생필품 나눔가게인 동행스토어(온기창고)도 인기다. 세븐일레븐, 토스뱅크, 노브랜드 등 기업과 개인 후원으로 운영되는 온기창고는 지난해 8월 용산구 동자동에 1호점이, 11월에 종로구 돈의동에 2호점이 개점했다. 지난해 12월까지 두 곳을 이용한 주민만 1만3841명으로, 일평균 200명 안팎이 온기창고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동행사업의 시행 이후 쪽방촌 인근 주변 골목상권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동행목욕탕 사업에 참여 중인 목욕탕 사 진모씨(57)는 "처음에는 다른 고객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됐지만, 좋은 취지라 동참하게 됐다"면서 "코로나19 이후로 목욕탕이 많이 없어지고 사양산업이 됐는데 이 사업 덕분에 고정 손님이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식당 종로집 사장 박씨도 "하루 한 번씩 사용해야 하는 쿠폰이다 보니 자연스레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주민들과 업주들 간에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지면서 서울시도 올해에는 사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시는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행식당과 동행목욕탕의 개수를 늘리고 이용 방법을 개선할 계획이다. 동행식당은 43개에서 49개로 늘려 식당과 메뉴 선택권을 넓히고 식당별 모니터링을 강화해 위생, 친절 등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
동행목욕탕은 이용 편의를 높이고 동행식당처럼 전자 결제방식을 도입한다. 아울러 동행식당과 목욕탕 이용 과정에서 쪽방 주민이 인근 주민과 함께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목이 형성되고 거동이 불편한 주민에게는 자진해서 음식을 배달하는 상호돌봄 관계가 형성되는 점을 고려해 이를 주민관계망 형성사업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쪽방 주민들이 혜택이 늘어나면 여기에 계속 머물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사업의 최종목표는 지속 가능하게 어려운 분들을 돕고 이들이 자활·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쪽방촌 지원 사업에서 좋은 효과를 내 지역사회로 확산할 수 있는 모델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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