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등에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과 반도체 웨이퍼 세계 점유율 1위 생산기업인 일본 신에쓰화학은 석유화학 고부가 특화 성공사례로 꼽힌다. 1926년 창업한 신에쓰화학의 시작은 비료였다. 그러나 1960년대 실리콘웨이퍼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이어 1970년대 PVC 사업에 진출하면서 자신만의 제품군을 특화했다. IT 버블이 꺼지던 2001년 700억엔을 설비투자에 쏟아부으면서 시장 장악에 성공했다.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은 1990년대 업계에 불황이 찾아오자 정부와 함께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1958년 석유화학 산업에 진출한 일본은 일찌감치 세계 석유화학 산업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대만처럼 후발 경쟁국이 등장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범용제품 설비를 축소하고 제품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사업 재편을 수십 년에 걸쳐서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스미토모화학은 에틸렌 생산설비를 폐쇄했으며, 미쓰비시는 계열 화학 3개 사를 통합했다. 2016년에는 미쓰비시·아사히가 에틸렌 생산설비를 하나로 합쳤다. 또 이데미쓰와 쇼와셸, JX사와 도넨도 합병했다.
지금도 범용제품 생산 축소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에틸렌 생산 규모는 2010년 802만3000t에서 2015년 743만3000t으로 감소했으며, 2020년에는 681만7000t으로 더 줄었다.
제품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연구개발(R&D)에 지속해서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매켄지에 따르면 일본 주요 석화기업의 매출액 대비 R&D투자 비율은 2021년 기준 3.5%로, 한국(1%)이나 대만(1.3%)을 압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석유화학 기업들과 사업재편을 주도하면서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고부가 소재산업으로 전환을 도왔다. 1999년 ‘산업활력법’과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 기업의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회사마다 특정 제품 생산에 주력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여건과 상황이 달라 정부 주도로 사업재편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다만 정부가 석화 기업들의 사업 방향을 살펴보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최근 들어 이와 관련해 기업들을 개별 접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사업 부문을 조정하거나 빅딜을 진행했지만, 우리나라는 공정거래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정부가 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정부가 석화기업들과 현황을 살펴보고, 사업영역을 거시적으로 조정하는 작업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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