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에서 첫 여성 파트너가 탄생했다. 81년생 김유진 IMM PE 부사장(한샘 대표)이다. 김 부사장은 2009년 IMM PE에 입사해 할리스커피 매각에 이어 에이블씨엔씨(미샤), 한샘 등 기업의 위기 극복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하반기 한샘 대표집행임원으로 선임돼 구조조정 없이 경영 효율화만으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손대는 기업마다 기적처럼 살아나게 만드는 비결이 궁금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니에요. 빈말이 아니라 조직이 어느 정도 크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하려고 하면 오히려 망치게 돼요. 회사 안에 계신 분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제 일의 핵심입니다."
김 대표는 젊은 여성 CEO(최고경영자)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력도 화려하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와 서울대 경영대학원(MBA)을 거쳐 보스턴컨설팅(BCG) 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IMM PE에 합류해 할리스에프앤비, 레진코믹스, 태림포장 등의 인수합병(M&A) 거래를 주도했다.
공대 출신으로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나 IT 스타트업에서 근무한다. '공순이'가 어쩌다 이런 투자자의 길을 걷게 됐을까. 대학 시절 딱히 모범생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 200만원만 가지고 훌쩍 인도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유유자적한 성격이었다. 그러다 막상 졸업할 때가 되자, 고민이 커졌다. 너무 큰 회사에서 부속품처럼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컴퓨터에 푹 빠져서 밤을 꼴딱 새우면서 프로그램을 짜는 그런 친구들과도 관심사가 좀 달랐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 대학원에 진학해서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졸업 후에는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강도 높은 업무도 경험했다. 2009년 IMM PE에 입사하면서 중심을 잡았다.
그는 특히 매각을 앞둔 포트폴리오 기업의 수익성을 대폭 끌어올린 이력으로 주목받는다. 김 대표는 2017년부터 할리스에프앤비 대표를 맡아 직접 경영하다가 2020년 KG그룹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하락세를 타던 에이블씨엔씨의 실적 개선에도 성공했다. 2021년 2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던 에이블씨엔씨 대표로 취임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한샘에 대표집행임원으로 취임 반년 만에 흑자회사로 만들면서 김 대표의 경영 능력은 제대로 인정받았다.
"결국 일이라는 건 타인의 도움과 협조로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수한 회사에 들어가 보면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많이 깨집니다. 들어보면 완전 다른 말씀을 하시고, 생각이 저보다 더 크고 넓으시죠."
여러 사람의 도움과 협조를 구하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람들의 장점과 성향을 빠르게 잘 파악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김 대표만의 경쟁력이 발휘된다.
"처음에 회사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기존에 있는 재원을 딱 맞는 자리에 두면 회사가 달라집니다."
김 대표는 큰 조직일수록 핵심 인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핵심 인재를 잘 발굴해 내면, 조직 전체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실 피인수 회사에 걸어 들어가는 순간부터 힘든 일이 많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동료, 임직원들이 함께 해줘서 극복하고 성장했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고요. 특히 선배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후배를 배려하고, 직원들을 격려하면서 계속 발전하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반대로 후배들도 저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큽니다. 한샘에서도 더 겸손하게 열심히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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