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32조 비급여 팽창 통제 고리, ‘혼합진료 금지’ 남은 쟁점은
②핵심 뇌관,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의료주체와 접점 좁혀야
③日은 70년대부터 대책 마련·편재 해소 초점... 韓 제언점은
④‘폐교’ 서남의대 재연 우려...지역필수의사제 실효성 가지려면
선진국들은 혼합진료 금지를 고리로 비급여 전반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있다. 독일에선 비급여 진료가 필요할 경우 환자가 의사의 증빙 서류를 첨부해 공공보험에 사전 승인 신청을 해야 한다. 호주에선 비급여 가격을 정부가 결정한다.
원본보기 아이콘비급여(건강보험 보장 안되는 치료)와 급여(건강보험 보장이 되는 치료)를 묶어 진료비를 청구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것은 의사들의 밥그릇을 뺏는 것으로 비춰져 필수의료 해법을 푸는 실마리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 소위 인기과들 상당수가 현재로선 혼합진료를 통해 돈을 벌기 쉬운 구조여서다. 의료계에서는 “의대증원보다 혼합진료 금지가 더 수익타격이 클 것”이라는 여론이 있을 정도다.
예컨대 백내장 수술(급여)을 할 때 다초점렌즈 삽입(비급여)을 겸한다거나, 물리치료(급여)를 받을 때 도수치료(비급여)를 함께 권하는 ‘끼워팔기’식의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것인데, 정부는 이를 통해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비급여 진료 시장을 통제할 방침이다. 블랙홀처럼 의사들을 빨아들이는 소위 인기과(피안성정재영)로의 과잉공급을 조이기 위함이다.
혼합진료가 제어 장치 없이 허용돼오면서, 급여와 함께 비급여 항목도 늘어나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 의료 생태계가 교란됐다는 지적은 줄곧 있어왔다. 비(非)필수 의료 분야에 수익이 쏠리고 건보 재정마저 갉아먹으면서 필수의료에 적은 자원이 배분돼왔다. 이에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원을 투입해 필수의료(응급·분만·중증질환·소아과) 수가를 올림과 동시에 팽창하는 비급여의 고삐를 죄는 통제장치로 ‘혼합진료 금지’의 칼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현재로선 ‘비중증 과잉 비급여’에 대한 혼합진료 금지만 밝혔을 뿐, 규제할 혼합진료의 범위나 기준을 어디까지로 할지,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가 제한될 여지는 없는지 따져볼 쟁점이 적지 않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혼합진료 금지 구체안과 관련해 세부안을 도출한다고 하지만, 사안별로 살펴볼 까다로운 쟁점들에 대해 사회적합의와 조율안 도출이 필요하다.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보건대학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비급여를 원칙적으로 (혼합진료 금지를 통해) 줄여나간다는 대의명제에는 동의한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표준진료 패키지’를 통해 급여 항목에서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선부터 정하는 것이 선행돼야 혼합진료 금지의 선이 분명해진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그 사례로 하지정맥류 수술을 제시했다. 건강기능상의 목적으로 하지정맥류 수술을 하는 환자도 있지만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비급여로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텐데 이처럼 수술 자체만 놓고 봐서는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네덜란드의 경우 표준급여 패키지 정리가 잘 돼 있다”면서 “급여·비급여 경계가 불분명한 부분들을 명확히 해야 혼합진료 금지 정책이 실효성을 가질 것”이라고 봤다.
급여·비급여 보장 영역, 건강보험으로 보장해야 할 영역과 실손보험으로 다뤄야 하는 부분에 대한 기준선부터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면 의료현장에서 당장 시행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문재인 정부가 성급하게 ‘모든 비급여의 급여화’를 내걸고 ‘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를 내놨다가 실패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반성은 보건복지부 자료에서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급여의 우선순위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의료영역의 급여화에 치중한 나머지 필수의료에 대한 미흡한 투자로 중증·응급의료 등 공백을 초래했다”<지난달 2일 공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 29쪽>고 적시했다. 비급여 항목 중, 급여화에 넣지 않아야 할 항목들까지 급여화하다 보니 ‘문케어’가 과잉진료 등 의료쇼핑을 부추겼다는 점을 정부가 직접 언급한 것이다. 뇌·뇌혈관 자기공명영상(MRI)를 급여항목에 포함시키니, 불필요한 과잉진료가 크게 늘어 건강보험 재정 누수요인이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은철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혼합진료 금지’는 국민의료비 중 공공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예컨대 복부수술을 하면, 경우에 따라 유착방지제를 써야 하는데 현재 비급여 상태라 이런 부분이 혼합진료 금지에 들어갈 경우 문제가 생긴다. 비급여가 하나라도 있으면 전체를 혼합진료로 보는데, 비급여와 급여 사이 선별급여까지 급여에서 빠져나가기 애매한 진료과목들을 정리하고 구분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혼합진료 금지와 함께 건강보험정책 전반의 제도적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진단도 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정책적 정합성이 중요한데 정부가 내놓은 건강보험종합계획을 살펴보면 비급여로 활용하는 혁신의료기술의 진입장벽을 전면 완화하는 내용도 담겨있다”면서 “상충되지 않게 제도 설계를 해야 혼합진료 금지의 정책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임혜성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장은 지난달 29일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혼합진료 금지는 치료적 성격이나 의료적 효과 없이 남용되는 것 중에서 반박이 어려운 부분부터 금지를 시작할 것”이라면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겠다”고 밝혔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