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사태가 일주일 넘게 장기화하면서 의료진 부족으로 구급차 이송이 지연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수가 적은 지방의 경우 응급환자가 병상을 찾아 타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례까지 잇따르고 있어 의료공백에 따른 피해 규모 확산이 우려된다.
28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포털(E-Gen)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서울 주요 병원의 응급실 일반병실(격리병상 등 제외)은 모두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이 50%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전체 27개 병상 중 단 3개 병상만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15개의 병상 중 가용할 수 있는 병상이 한 곳도 없었다. 해당 병원은 현재 의료진 부재로 안면 외상과 골절 등 모든 성형외과 진료가 불가능한 상태다.
삼성서울병원은 전체 병상 59개 가운데 절반에 못 미치는 25개 병상만 가용 가능했다. 서울대병원도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의료진 부족 사태로 응급실 진료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구급대원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용할 수 있는 병상 수가 50%를 밑돌면서 병원 앞에서 환자를 받아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 사설 구급차 업체 직원 A씨(42)는 "어제 서울아산병원에서 경증환자를 이송하는 데 2시간을 대기했다. 매우 운이 좋았던 편"이라며 "사태 이전에는 경증환자는 1시간 미만으로 기다리면 됐는데 요즘은 의료진들이 환자 상태를 보고 무한 대기하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대상으로 이송 업무를 중단한 사설 구급차 업체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사설 구급차 업체 관계자 B씨(48)는 "대기 시간이 몇시간씩 길어지다 보니 이번 사태가 끝나기 전까진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이송은 받지 않으려 한다"며 "환자들도 빅5 병원 응급실은 가기 힘들다는걸 아는지 종합병원으로 이송을 요청하는 건들이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에 비해 상급종합병원 수가 부족한 지방은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지역 간 경계까지 넘나들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내 병원이 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탓에 구급차들이 다른 지역 응급실까지 뺑뺑이를 도는 것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이 도내에 단 2개밖에 없는 강원도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원도에서 근무 중인 소방대원 C씨(30)는 "강릉 권역의 병원에서 환자 수용이 충분히 되지 않아 원주시로 전원을 가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더욱이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춘천시는 강원대 병원과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등 두 곳의 2차 병원에서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경증환자는 홍천군에 있는 병원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과 대전 역시 가용 병상이 부족해 20~26일 각각 42건과 23건의 구급차 이송 지연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응급실 과부하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구급대가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지 구급상황관리센터에 판단을 요청하는 횟수도 늘고있다. 구급상황관리센터는 환자의 중증도를 판단해 구급대에 대형병원 또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이나 병·의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달 16~26일 구급상황관리센터 일평균 병원 선정 건수는 66건으로 지난해 2월 일평균(38건)보다 73.7%가 증가했다.
소방당국은 당분간 전국의 응급 환자 이송 체계에 특이 동향이 없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각 시·도 상황실에 속해있는 구급상황관리센터의 인력을 지역 내 상황에 맞게 증원했다"며 "지원을 필요로 하는 지역은 없는지 전국을 모니터링하면서 상황을 관리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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