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삼성전자의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4'를 구입하기로 했다. 미국도 한국처럼 이동통신사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 3대 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통신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펙트럼이란 곳을 찾았다.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기록 중인 현 상황에선 통신료가 낮은 지역 기반의 알뜰폰(MVNO) 사업자 스펙트럼이 정답이라 생각됐다.
판단은 옳았다. 단돈 10달러에 출고가만 800달러에 달하는 갤럭시S24(128GB 모델)를 구입했다. 한화로 1만3500원이다. 남편이 썼던 보급형 스마트폰 '아이폰SE3'를 반납하자 무려 790달러를 할인해 줬다. 중고 스마트폰을 반납하면 기본 700달러가 할인되고, 중고폰 가치에 따라 최대 100달러까지 추가 할인이 가능했다. 우려했던 의무 약정 기간은 없었고, 오히려 월 29.99달러인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1년간 무상으로 제공해 준다고 했다. 한국에서 2~3년마다 1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삼성 스마트폰을 구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갤럭시S24는 어쩌다 미국에서 '공짜폰'이 됐을까. 정답은 무한경쟁이다.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에 따르면 미국에는 이른바 3대 이통사인 AT&T, 버라이즌, 티모바일 외에 자체 통신망을 보유한 30여개의 이통사가 있다. 3대 이통사의 통신망을 빌려 운영되는 MVNO 사업자는 5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한경쟁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신 시장 성장이 정체되면서 이통사 간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스마트폰 보조금을 일괄 공시하고, 보조금 지원폭을 제한하는 규제도 없다. 그 결과 미국에선 갤럭시S24뿐 아니라 아이폰15도 계약 조건에 따라 공짜로 쓸 수 있다.
미국 시장이 전 세계 IT 업계에서 갖는 상징성도 감안해야 한다. 삼성은 물론 애플 또한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거액의 보조금을 살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통사 무한경쟁에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 미국의 지위까지 더해져 단돈 10달러에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 구매가 가능해진 셈이다.
반면 한국에선 정부가 없던 법까지 만들어 이통사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정부가 폐지로 가닥을 잡은 '단통법'이다. 우리나라는 박근혜 정부 시절 도입한 단통법으로 모두가 스마트폰을 비싸게 사는 상황이 10년간 이어졌다. 당시 단통법 입법을 주도했던 정부는 이통사의 보조금 경쟁이 줄어들며, 자연스레 통신요금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입법 취지는 크게 퇴색됐다. 미국 소비자가 삼성과 애플 스마트폰을 공짜로 살 때, 한국 소비자는 똑같은 제품을 구입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통신요금 인하 효과도 체감되지 않는다.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란 점을 잊은 결과다.
이통 3사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5개사가 점유율 경쟁을 펼쳤지만, 이후 3개사가 20년가량 과점 체제를 굳히고 있다. 사실상 '자연 독점' 지대를 누리는 이통 3사에 단통법은 이 같은 과점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도록 했다. 지난해 이통 3사가 거둔 영업이익만 3년 연속 4조원대다. 한국에선 이통사의 보조금을 최대한 받아도 미국에서처럼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10달러에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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