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배 가격 설 지나도 오른다…"비싸진 이유 따로 있었다"[조선물가실록]

⑦일시적인줄 알았는데…천정부지 과일값
설 직전보다 사과값 16.5%↑ 배 15%↑
"기후위기 대응하는 유통 시스템 바꿔야"

'금(金)값'이 된 과일 가격의 오름세가 설이 지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과일은 식탁 물가의 불안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1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상품 등급의 사과(후지 10개) 가격은 지난 13일 기준 평균 2만9398원이다. 이는 설 연휴 직전인 8일(2만5243원)보다 16.5% 상승한 것이다. 1개월(2만6187원) 전보다는 12.3%, 지난해(2만2954원)보다는 28.1% 올랐다. 다른 과일도 상황은 비슷하다. 상품 등급의 배(신고 10개)는 13일 기준 평균 3만6506원이다. 8일 3만1739원보다 15% 올랐고, 1년 전(3만501원)보다는 19.7% 급등했다.

감귤출하연합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제주 노지감귤 5kg당 도매가격이 평균 1만4000원으로 지난해 1월보다 50%가량 급등한 가운데 10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고객이 사과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감귤출하연합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제주 노지감귤 5kg당 도매가격이 평균 1만4000원으로 지난해 1월보다 50%가량 급등한 가운데 10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고객이 사과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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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가격 급등은 전체 식료품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에서 '과실'의 기여도는 0.4%포인트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과실류의 물가 기여도가 0.1~0.2%p에 그쳤다는 점에서 갑자기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력이 세졌다는 뜻이다. 과실류 물가는 사과, 배를 포함해 복숭아, 포도, 밤, 감, 귤, 오렌지, 참외, 수박, 딸기, 바나나, 키위, 블루베리, 망고, 체리, 아보카도, 파인애플, 아몬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물론 농식품 물가가 전체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는 건 지나친 해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설날을 맞아 공급이 급등한 건 맞지만, 이같은 가격변동은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2일 발간한 '농식품 물가 이슈, 진단과 과제' 보고서에서 "농식품이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가중치가 높지 않고 개별 품목으로 보면 돼지고기(0.98), 국산쇠고기(0.86), 쌀(0.42), 수입쇠고기(0.31)를 제외하면 0.3 이하로 낮다"며 "이마저도 대체로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자연스러운 시장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과일 가격 왜 올랐을까…①기후변화 ② 수입제한 ③생산-유통의 구조적 문제

분명한 건 과일 값 급등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체감된다는 사실이다. 설을 앞두고 제수용으로 쓰이는 양질의 사과·배는 한때 한 개에 1만원 안팎으로 치솟기도 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민족 대 명절 설날을 앞둔 7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선물용 과일상자가 진열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민족 대 명절 설날을 앞둔 7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선물용 과일상자가 진열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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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기후변화 영향이다. 지구온난화로 과일 작황 부진이 나타났다.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 묻혀 열매를 맺도록 수분 활동을 하는 꿀벌이 줄었고, 이상기온과 병충해 피해가 나타나면서 생산량이 급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39만4428톤(t)으로 전년(56만6041t)보다 30.3% 감소했고, 배 생산량은 18만3802t으로 전년(25만1093t)보다 26.8% 줄었다.

사과·배의 수입이 제한된 상황 속 정부의 물가 관리가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설 연휴에 앞서 수입과일 6종에 할당관세(특정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일정 기간 낮추는 제도)를 적용했으나 할당관세 품목에서 사과·배는 해당하지 않았다. 또 이 과일들을 수입하기 위해선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조치(SPS)에 따라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을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통과 조건이 까다로워 사과·배 수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생산-유통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농산물 도매유통은 공영도매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국내 최대 공영농산물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선 90%에 달하는 농산물이 경매방식으로 거래되고 있다.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이 가락시장으로 와서 경매가 이루어지고, 경매를 통해 소매상에 중개하는 중도매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도매법인은 경매사를 고용하는 등 경매를 주관하는 역할을 하고 수수료로 4~7%를 챙긴다.


문제는 소수의 도매법인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독점적인 수탁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매제 시스템 속 민간 도매법인이 농산물의 가격 결정을 주도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기도 하다. 농협가락공판장을 제외하면 청과부류 대아청과, 동화청과, 서울청과, 중앙청과, 한국청과 5개 민간 도매법인이 판매를 전담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을 역임한 백혜숙 국민밥상포럼 대표는 기후 위기 상황 속 경매제만 고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백 대표는 "경매에 나온 물량이 부족한 상황일 경우 중도매인들 입장에서는 거래처에 팔아야 하니 수요가 몰려 가격이 올라가게 돼 있다"며 "중도매인이 높은 가격에 낙찰받고, 또 품귀 현상이 있다면 가격이 또 올라가고 거기에 더 유통 마진을 더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대표는 또 "산지 수집인이라는 이들이 생산자에게 밭데기로 사서 농산물을 경매에 올리는데 경매제 안에서 농민이 가격 협상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며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면 산지 수집인과, 경매를 위해 도매법인을 거칠 필요가 없어서 2개의 유통단계를 줄일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유통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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