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당신은 돈·집 주면 애 더 낳을텐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평생 여성, 노동, 계급 문제를 연구한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주립대 법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EBS ‘다큐멘터리 K-인구 대기획 초저출생’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사실에 이렇게 탄식했다. 그 정도로 낮은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머리를 감싸는 이 장면은 '밈'이 되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인구감소 상황이 14세기 유럽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넘쳐나는 염려의 목소리에 부응해 정부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출산 장려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말 인천시는 인천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만 18세가 될 때까지 1억원을, 충북 영동군은 1억2430만원을, 경남 거창군은 아이 1명당 1억1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모르지만 1억원은 기본이다.

민간기업도 동참했다. 부영그룹은 지난 5일 시무식에서 ‘자녀 1인당 1억원 지급’을 발표하고, 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 70명에게 현금 70억원을 지급해 화제가 됐다. 셋째를 낳으면 세 명분의 출산 장려금이나 국민주택 규모의 영구임대주택 중 택일하도록 했다. 돈이든 집이든 재정적 지원을 저출산 해법으로 본 것이고, 이는 정부의 시각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한계가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 저출산 인식조사'에 따르면 '저출산 해결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일·가정 양립 제도의 확대"라고 응답한 사람이 25.3%로 가장 많았다. 돌봄·의료 서비스 등 인프라 구축(18.2%)과 일자리 및 소득 확대(16.1%), 국민인식 제고(14.6%)가 뒤를 이었고, 현금성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9.5%에 불과했다.


아시아경제가 연간기획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에서 제시한 해법도 저고위의 인식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육아휴직을 더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고, 여성 육아휴직 후 복귀율이 높은 기업, 직장어린이집이 있는 기업, 주말에도 운영하는 남이섬 어린이집이 있는 경기 가평군의 사례 등을 통해 '일·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 확립'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K인구전략 해법에 대해 "당장 가시적 성과를 원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면에서 광주시의 정책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6일 올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를 대상으로 했던 10시 출근제 도입 중소사업장 장려금 지원사업 범위를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침에 쫓기지 않고 아이를 안전하게 학교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참 좋았다"는 학부모들의 호평이 나왔다. 출근 시간을 단 1시간 늦췄지만 일·가정 양립을 고민한 명쾌한 해법의 하나가 됐다.


적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는 직장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고 복귀 못 할까 봐, 동료들 일이 늘어날까 봐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가며, 육아휴직 중에도 돈 걱정을 하지 않게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아픈 아이를 둘러업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고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에 몇 시간 대기를 감수해야 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1억원 줄 테니 애 낳아라’로는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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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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