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은 혁신을 촉진하는 필수적 구성 요소입니다."
로테 소데만 쇠렌센(Lotte Sodemann Sørensen) 유니버설 로봇 인사부서(HR) 부사장은 13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다양한 기술과 시각을 가진 개인을 유치함으로써 인재 풀을 확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이처럼 말했다.
유니버설 로봇 본사가 있는 덴마크 오덴세는 1980년대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 조선소가 있어 조선업 도시로 명성을 떨쳤지만, 1990년대 한국 조선사들에 가격 경쟁력 등에서 밀리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오덴세는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나섰고 2000년대부터 최첨단 로봇 클러스터로 탈바꿈했다.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기업이 유니버설 로봇이다. 유니버설 로봇은 2005년 대학생 3명이 창립한 회사다. 산업용 협동로봇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으로 현재는 전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협동로봇 시장은 2025년 6조8842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쇠렌센 부사장은 "로봇 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직원은 남성이지만 우리는 새로운 엔지니어와 다른 직원을 찾을 때 인구의 반만을 대상으로 한정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우리는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직업을 분리하는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산업과 STEM 분야가 오로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오해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며 "우리는 젊은 여성들도 로봇 공학 분야에서 유망한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고정관념을 타파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로봇은 여성이 로봇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직업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학생을 위해 매년 또 다른 로봇업체 미르(MiR)와 함께 장학금을 제공한다. 장학금은 3만 덴마크 크로네(약 576만원)로, 인턴십 과정과 연계돼 있어 수혜자는 유니버설 로봇이나 미르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는다. 쇠렌센 부사장은 "우리는 이러한 여학생들을 통해 롤모델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면서 "STEM 공부 및 경력 추구에 대한 가설을 깨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여성 롤모델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니버설 로봇에서 글로벌 기술 규정 준수 책임자로 일하는 로버타 넬슨 시어(Roberta Nelson Shea)는 지난해 ‘엥겔버거 로보틱스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됐다. 로봇계 노벨상이라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이다. 유니버설 로봇 공동 설립자인 에스벤 외스터가드(Esben Østergaard)가 2018년 수상한 이후 5년 만이다. 그는 수상 직후 인터뷰를 통해 "로봇업계 내 여성은 여전히 소수인 것이 현실"이라며 "엥겔버거 수상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로봇공학과 기술 발전에 있어 여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영감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로봇은 직원들의 근무 환경에도 신경을 쓴다. 쇠렌센 부사장은 "육아 등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환경은 여성과 남성에게 모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언제, 어떻게, 어디서 업무를 완료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바"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비슷한 성격의 덴마크 산업협회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덴마크 기업 이사회 성별구성 조사’를 통해 "성별 다양성에 투자하는 회사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치 창출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다양한 관점과 경험은 의사결정에 역동성을 가져오며 이는 창의성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보다 미묘하고 신중한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혁신을 촉진한다"며 "성별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는 단지 평등을 위한 하나의 상징적인 행동이 아니라 더욱더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에 대한 투자"라는 결론을 내놨다.
덴마크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생활 간 균형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에 나섰다. 2022년 ‘남성 출산휴가(육아휴직) 할당제’를 처음으로 실시한 것이다. 변경된 육아휴직 제도는 총 52주(부모 각각 24주+여성 출산 전 4주 출산휴가) 중 11주는 상대 배우자에게 양도할 수 없고, 자녀가 태어난 후 1년 이내에 쓰도록 했다. 즉, 아버지인 남성이 육아휴직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양도가 불가능해져 11주를 버리는 셈이다. 그 결과 2022년 7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육아휴직을 쓴 남성의 수는 40%까지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여성은 12% 감소했다.
킹가 사보 크리스텐센(Kinga Szabo Christensen) 덴마크산업협회 부국장(왼쪽)과 피어 라이어(Peer Laier) 덴마크산업협회 변호사 겸 노동법 디렉터(사진=덴마크산업협회 홈페이지)
원본보기 아이콘킹가 사보 크리스텐센(Kinga Szabo Christensen) 덴마크산업협회 부국장은 "이런 변화가 노동시장과 여성의 노동 생활에서 더욱 많은 평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여성이 출산 휴가를 사용하면 경력 개발이 늦어지는 것을 흔히 보아왔다"며 "육아휴직 할당제로 더욱 많은 여성이 관리직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성 육아휴직을 사실상 할당하는 제도 개정에 대해 고용주의 반대는 없었을까. 피어 라이어(Peer Laier) 덴마크산업협회 변호사 겸 노동법 디렉터(이사)는 "대체로 고용주들은 남성과 여성 간 보다 공평한 휴직 분배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덴마크 내 남성의) 육아휴직 할당 트렌드는, 사실 법으로 채택되기 전부터 이미 고용주와 고용인들 간의 단체 협약에 도입돼 왔다"고 전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 간 휴직 사용률이 더욱 평등하게 분배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는 노동시장 내 평등, 그리고 경력개발이 더욱 평등하게 되도록 보장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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