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농업용 살충제의 감축 의무화 법안을 사실상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6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연설에서 "'지속가능한 살충제 사용 규제'(Sustainable Use of pesticide regulation·SUR) 발의 제안을 철회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며 "더 많은 대화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월 유럽의회 선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선거 이후 새로 구성되는 차기 집행부가 원점에서 재검토할 전망이다.
SUR은 집행위가 2022년 6월 발의한 규제로, 2030년까지 각 회원국은 화학 살충제의 사용을 50%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이다. 집행위 초안이 공개된 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 따른 식량안보 우려 등에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집행위는 '안전의 시급성'을 앞세워 강행 의지를 밝혀왔다. 그러나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거세지면서 초안 발의 1년 8개월 만에 백기를 들게 된 것이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 각지 농민들은 EU의 엄격한 환경 규제와 저가 수입산 유입 급증에 항의하며 트랙터를 몰고 거리를 봉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일에는 EU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수도 브뤼셀도 점령, 도로 교통을 마비시켰다.
정책이 철회되면서 현 집행부의 기후 정책인 '그린딜'(Green Deal)에도 타격을 줄 전망이다. 그린딜은 2019년 출범한 집행위가 2050년 기후 중립 달성과 지속 가능한 산업환경 구축을 목표로 제시한 포괄적 입법 패키지다. SUR도 포함돼 있다.
일각에선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농민 지지를 등에 업은 '극우 돌풍' 분위기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를 앞두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소속된 유럽의회 최대 정치 그룹인 유럽국민당(EPP)에서는 최근 들어 집행위의 '그린딜' 일부 법안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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