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입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민생경제'다. 그러나 여야가 경제 회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총선에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경제통'들이 있다. '4대 그룹' 대표를 지낸 기업인부터 4차산업 전문가, 반도체 해결사까지 출격한다.
우선 국민의힘에 입당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한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주목된다. 한날한시에 영입 발표가 이뤄지면서 형성된 '맞대결' 구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
고동진 전 사장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경성고, 성균관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평사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모바일(IM) 부문 대표이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무선사업부 개발관리팀장 시절 기획한 '갤럭시 노트' 시리즈가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업계에선 '갤럭시 신화'로 통한다. 회사 안에서는 화통한 성격으로 '소통왕'이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한다. 그는 당초 삼성전자 본사가 위치한 '경기 수원무'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당 안팎에선 비례대표 출마나 전략공천 시나리오도 꾸준히 거론된다.
민주당은 공영운 전 사장을 영입했다. 당내에선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홍성국 의원 포지션을 이어받아 '경제정책 생산'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다. 공 전 사장은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1.4%까지 추락한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미래세대를 위해, 3% 수준의 질적 성장으로 이끌기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으로 합류한 '4차산업 전문가'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했다. 한솔PC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넷마블 이사, 엔씨소프트서비스 대표 등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15년간 임원을 지냈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새솔테크에서 대표이사(CEO)를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인재 영입 발표 직후 '부산 사하을' 출마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5선'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버티고 있는 지역구다. 지난달 23일에는 민주당의 총선 첫 정강정책 발표를 맡아 'e스포츠 진흥' 등 공약을 제시했다. 이는 부산에 대한 이 전 전무의 구상과도 연결된다. 가덕도 신공항 개항에 맞춰 부산을 'e스포츠 성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격차 해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부산에서 동서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폐교를 되살려 설립한 알로이시오기지 1968 초대 기지장을 맡기도 했다. 'closing the gap'이라는 의정활동 목표도 세웠다.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에는 교육 격차에 국한되지 않고, 동부산의 전반적인 격차 해소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의희망 1호 영입인재인 이창한 전 반도체협회 부회장이 30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한국의희망 입당 환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이 전 부회장,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제3지대에선 '반도체 전문가' 이창한 전 반도체협회 부회장이 등판했다. '반도체 해결사'로 꼽히는 양향자 의원이 직접 영입을 주도했고, 지난달 30일 한국의희망(개혁신당)으로 합류했다. 이 전 부회장은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 출신으로 서울 중앙고,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기술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뒤 특허청·산업자원부·지식경제부·미래창조과학부 등을 두루 거쳤다.
그는 '반도체 분야 등 경험을 의정활동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묻는 말에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이 굉장히 떨어지고 있는데, 혁신기술을 뒷받침할 시스템이나 제도는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을 꺼냈다. 이어 "건전하고 생산적인 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통해 기업 성장이 촉진돼야 한다"며 "우후죽순 늘어난 산업지원법을 묶어 총괄적인 법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출마 방식은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현역 출신 '경제통'의 재도전도 지켜볼 대목이다.
먼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선언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으로, 경제 현안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식견을 갖춘 전문가로 꼽힌다. 2020년 7월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국회 본회의 5분 연설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자극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도, 민주당이 주도한 '임대차 3법' 등의 허점을 조리 있게 파고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스로 의원직을 내려놨던 일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그는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논란이 불거졌고, 2021년 8월 직접 수사를 의뢰하며 자진해서 사퇴했다. 경찰에선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고, 윤 전 의원은 문제의 농지를 전량 매각한 뒤 매매차익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복귀 신호탄을 쏘아 올린 중·성동갑 지역구는 19대 총선부터 12년간 민주당이 지킨, 여당 입장에선 험지 중의 험지다. 윤 전 의원은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겨냥해 '운동권 청산론'을 띄우며 각을 세우고 있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 중·성동을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영국 레스터 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를 지냈으며, 윤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KDI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시아버지 고(故) 김태호 전 내무부 장관의 선거를 도우면서 정치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여성기획공천 1호 후보로 서울 서초갑에 출마해 3선을 지냈다.
그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여당 소속이면서도, 정부의 감세 정책을 '친재벌 정책'이라 비판했을 정도로 소신파다. 재선 시절 2년간 법제사법위원회에 발이 묶여 있던 증권거래세법 개정을 끝내 관철하는 등 추진력 면에서도 강점을 인정받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출마 선언에서 "3선 국회의원, 국회 상임위원장, 예산통, 경제학 박사, 미국과 한국의 대표 경제연구소 출신 경제통을 거치며 쌓은 역량과 경륜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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