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경수(31)는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선산'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김영호 역을 맡았다. 영호는 선산의 상속자에게 자신이 배다른 동생이라며 갑자기 나타난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고립됐다 문득 나온 것처럼 이질적인데,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눈빛과 몸짓이 동물적이다. 쫀쫀한 긴장감으로 시청자 멱살을 잡는 그는 이번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선산'은 존재조차 잊고 지내던 작은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일들이 연속되고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6부작 넷플릭스 시리즈로, 지난 19일 공개됐다. 영화 '부산행'(2016) '반도'(2020), 넷플릭스 '지옥'(2021)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기획·각본에 참여하고, 그의 조감독으로 여러 작품 함께한 민홍남이 연출·각본을 맡았다.
류경수는 등장부터 비범한 영호로 시선을 빼앗았다. 그는 선산 상속자 서하(김현주 분)에게 작은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나타난 생전 처음 보는 이복동생으로 나타난다. 갑자기 나타난 그는 선산에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처음 등장하는 장례식장 장면은 강렬하다. 그는 모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장례식장 마루에 홀로 신발을 신고 들어가며 수상한 기운을 낸다.
그는 "첫 등장이 압도적이어야 배역이 성립된다고 봤다. '압도적' 느낌이 뭘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걸음걸이부터 시선, 행색까지 모두 생전 처음 보는 느낌을 내길 바랐다. 우는 거 같은데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영정사진을 보는지 아닌지 헷갈리고. 가만히 있다가 화들짝 놀라는 남다른 모습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키워드로 '고립'을 꼽았다. 류경수는 "오랫동안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온 영호는 다른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까. 의도 없이 하는 행동도 타인에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영호는 어머니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 비뚤어진 모성애. 어머니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묻자 "영호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아들"이라고 답했다.
"영호는 엄마 말은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들이라고 봤어요. 엄마를 많이 사랑해서 엄마가 없으면 안 되죠. 대화는 많지 않았겠죠. 주로 듣는 쪽 아니었을까요. 차려주는 밥 잘 먹고, 조용히 말을 잘 듣는 관계로 봤어요. 결국 그가 원한 건 마지막 대사 같아요. 집에 가자. 선산 싸움 다 모르겠고, 평범하게 집에 가서 엄마랑 살던 대로 살자고. 그게 영호가 가장 원하는 바 아니었을까요."
류경수는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유지 사제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 이어 '선산'까지 연상호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연상호란 '귀인'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덕분에 평생 못해볼 캐릭터를 많이 했다. 귀한 경험이었다"며 고마워했다. 이어 "촬영 과정에서, 많은 부분 맡겨주고 존중해주셨다. 그게 때론 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마쳤다"고 덧붙였다.
류경수는 16세에 배우를 꿈꾸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 영화사에 무턱대고 찾아간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온라인에 검색한 방법을 토대로 동네 사진관에서 촬영한 사진을 첨부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노란 서류 봉투에 담긴 자기소개서는 '안녕하세요, 저는 류경수입니다. 저는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로 시작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당시에는 영화사 앞에 프로필(포트폴리오) 함도 없을 때였다. 프로필을 들고 무턱대고 찾아갔다. 아직도 당시 사무실 풍경이 생생하다"며 웃었다.
"연기를 계속 배웠어요. 대학생 독립·단편영화에 출연하며 오디션을 계속 봤죠. 이후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어요. 영화 '시'(감독 이창동) 오디션도 기억이 나요. 첫 상업영화는 '청년 경찰'(2017)이었어요."
영화 38편, 드라마 11편. 이제 겨우 30대 문턱을 넘은 배우로 꽤 많은 작품 편수다. 류경수는 "예전에는 '네가 무슨 배우냐' '배우는 아무나 하냐'는 시선도 받았다. 비수가 되는 말이었다. (웃음) 이제 배역이 주어져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했다. 그는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 예전에는 콤플렉스였다. 쌍꺼풀도 있고 이목구비도 뚜렷했으면 바랐는데, 지금은 만족한다. 캐릭터를 씌우기 적합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차세대 황정민, 설경구'라는 평가도 받는다. 지난해 영화 '대무가', 드라마 '구미호뎐 1938'에서 굵직한 배역을 꿰차며 인상적인 연기로 호평받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 더 잘할까 고민하게 하는 동력이죠. 또 다르게 생각해보고, 전혀 다른 시각에서도 접근해보려고 해요. 중요한 건 '내 몫을 해내자'는 마음가짐이죠. '장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연기 장인'이 되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 오래 연기자로 살기를 늘 꿈꾸죠. 어떤 분야든 '장인'이라 불리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맨스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멜로 중에 영화 '봄날은 간다'(2001) 감성을 제일 좋아한다. 마지막에 슬펐다. 통통 튀는 '러브픽션'(2012)도 재밌게 봤다. 남녀가 행복한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면 좋겠다. 감정을 주고받는 로맨스를 연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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