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3시께 찾은 서울 동대문 일요시장은 불어닥친 추위에도 인파로 북적였다. 이날 평화시장 인근에는 대로변을 사이에 두고 약 40개의 노점상이 의류와 잡화를 산처럼 쌓아두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무조건 2000원'이라는 문구를 매대 앞에 붙여놓은 한 의류 매장은 20대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손님은 상인에게 "정말 이 가격이 맞느냐"라며 재차 묻다가 1만원 지폐 한 장을 내밀고는 옷가지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두툼한 봉투를 양손에 든 손님이 사라지자 노점을 기웃대던 다른 손님이 매대 앞으로 다가가 옷가지를 들추기 시작했다.
최근 물가가 치솟으면서 저렴하게 생필품과 의류를 구입할 수 있는 동대문 일요시장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주목을 받고 있다. 동대문 일요시장은 매장에 쌓인 재고와 공장에서 덤핑 물건을 싼값에 가져온 상인들이 주말마다 모여드는 장터다. 시중 판매가보다 물건이 3배 이상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최근 젊은 손님이 부쩍 늘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일요시장에서 머플러를 팔고 있는 상인 A씨(38)는 "20대 손님들이 하루에 적게는 50명 정도 많게는 100명가량 온다"며 "값이 싸니 한 번 살 때 대여섯 개는 사 간다. 옷이나 패션 아이템 종류가 인기가 많다"고 웃음을 지었다.
의류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판매하는 노점상에도 젊은 손님의 발길이 이어졌다. 잡화상에는 생리대가 3000원, 주방 가위가 1500원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잡화점 매대 앞에서 만난 김모씨(25·여)는 "싼값에 옷을 판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의외로 생필품이 싸서 한살림 장만한 것 같다"며 "여성용품이나 노트까지 헐값이라 한두 개 집어 들다가 벌써 한짐이 됐다"고 말했다.
MZ세대에게 일요시장은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절약의 성지와 같은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생활비 절감을 주력 콘텐츠로 내세운 한 유튜버가 올린 일요시장 소개 영상은 업로드 5일 만에 조회 수 94만건을 기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일요시장에서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뜻하는 이른바 '가심비' 구매를 추구하는 MZ세대가 일요시장을 찾기 시작한 데는 고물가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 기준 5개월째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대 상승을 지속하는 등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같은 달보다 3.7% 올랐다.
여기에 더해 MZ세대에게 일요시장은 일종의 콘텐츠이자 재미를 찾는 장소가 됐다. 의류 노점상 앞에서 패딩을 입어보던 강모씨(27)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10만원은 줘야 할 패딩을 여기서는 3만원이면 산다"며 "잘 고르면 질 좋은 물건을 발견할 때도 있는데, 보물찾기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에게도 일요시장은 재고를 처분할 좋은 기회다. 상인 중 일부는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매장에서 팔리지 않은 물건을 이곳에서 처리하곤 한다.
서울 금천구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 B씨(67)는 "주말마다 일요시장에 매장에 있던 물건을 가지고 나와 '재고 떨이'를 한다"며 "코로나19로 장사가 어려웠을 때 쌓이기 시작한 물건을 이곳에서 많이 처분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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