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끈적한 고물가 현상(sticky inflation)이 지속되고 있다. 고물가와의 싸움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조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줄어들고 금융시장도 요동치는 중이다.
18일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의 소비자물가(CPI)는 전년 동월 대비 4.0% 올랐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3.8%를 웃돈다. 영국 통계청은 작년 11월 말 적용된 담뱃세 인상을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물가상승률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영국 중앙은행의 5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줄었다. 시장에서는 오는 4~5월에는 영국 물가가 안정화될 것으로 봤는데 시점이 뒤로 늦춰지는 분위기다.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은 이와 관련해서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도 봤듯 인플레이션은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예상을 웃도는 고물가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4%로 시장 예상치인 3.2%를 상회했다. 에너지 및 자동차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분명히 완화되고 있지만 12월 물가는 지난 몇 달에 비해서는 다소 강하게 나왔으며 1월에도 이어질 수 있다"며 "연방준비제도(Fed)의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은 줄어든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도 "이번 물가보고서는 Fed의 인플레이션 완화 경로가 순탄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며 "Fed 인사들 및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주로 공급망 개선에서 기인한 최근의 인플레이션 완화 추세의 지속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소비 호조도 금리 인하 기대감을 후퇴시켰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6% 증가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시장 예상치인 0.4%를 웃돌았다. 미국의 소비가 여전히 좋다는 것은 미국의 경제가 탄탄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빠른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후퇴시키는 요인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소매판매 지표가 잘 나오면서 작년 4분기 미국의 성장률이 예상보다 좋을 수 있다는 평가가 제기됐다"며 "이는 3월 금리 인하 기대감을 감소시킨다"고 분석했다.
유로존(EU) 역시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2.9% 올라 상승률이 전월의 2.4%를 웃돌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확실해야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며 시장의 조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차단했다.
한국도 여전히 고물가와 싸우는 중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물가를 목표치인 2%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걸음인 '라스트 마일(last mile)'이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총재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우리 물가상승률도 점차 2%에 근접해 갈 것이지만 목표 수준에 안착하는 시기는 불확실하다"며 "마라톤에서의 마지막 구간인 라스트 마일이 가장 어렵다"고 설명했다.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글로벌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340원을 돌파하면서 2개월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일 오후 기준 103.50을 기록했다. 한 달 만에 최고치다.
기준금리 조기 인하 기대감이 줄면서 한국증시를 비롯해 중국, 멕시코, 브라질 등 신흥국 증시가 올해 들어 크게 하락하는 등 악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 코스피 지수는 올해 들어서 7% 이상 하락하면서 세계 주요국 중에 가장 크게 빠진 상황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실물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 하반기부터 반등한 주택가격이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임대료 가격 상승에 영향을 주면서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기대보다 더딜 가능성이 있다"며 "스티키 인플레이션으로 시장의 기대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거나 혹은 인상되는 경우 실물경기가 침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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