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집에서 수년간 제조·발효한 식초를 돈을 받고 팔기 위해서는 식품위생법상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영업신고를 하면 충분하고 영업등록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사기와 식품위생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2심 재판부가 A씨의 혐의 중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본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식품위생법령에 의하면 식품제조·가공업은 영업등록이 요구되나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은 영업신고가 요구된다"며 "식품제조·가공업은 '총리령으로 정하는 식품을 제조·가공업소에서 직접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영업'을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총리령에서는 통조림이나 병조림 식품을 제외한 모든 식품과 식품제조·가공업 영업자가 제조·가공한 식품으로 제조·가공업소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덜어서 직접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식품을 영업등록 대상인 총리령에서 정한 식품으로 규정하면서도 식초 등 일부 식품을 제외하고 있는데, 식품 제조기간의 장단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처럼 이 사건 식초의 제조기간이 7년 정도에 이른다고 해서 피고인이 스스로 제조·가공해 판매한 이 사건 식초가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대상 식품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 없다"며 "피고인의 이 사건 식초 제조행위가 영업등록이 필요한 식품제조업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이나 그 대상 식품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자신이 집에서 7년간 숙성·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제조한 식초가 파킨슨병에 수반되는 변비 증세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며 2020년 5월 식초 7병을 1240만원에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2021년 3월 소송서류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찾아온 법원 집행관에게 욕설을 하며 협박해 공무를 방해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2020년 4월 파킨슨병 환자나 가족들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노모나 자신의 집에 찾아온 환자들이 자신의 도움을 받아 병원치료보다 확실한 치유효과를 체험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파킨슨병, 치매 치료법에 대한 소고'라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글을 보고 연락한 피해자 B씨가 '장모가 파킨슨병으로 변비, 복통이 심각한 상황인데 해결이 가능한지' 문의하자 자신의 노모가 자기가 만든 식초를 먹고 변비 증세를 해소했다며 직접 환자를 봐야 정확한 처방을 할 수 있다고 방문을 유도했다.
A씨는 자신을 찾아온 B씨에게 "상대적으로 효능이 적은 시가 20만원 상당의 식초가 있고 , 효능이 뛰어난 시가 300만원 상당의 식초 원액이 있는데 식초 원액은 한 사람이 복용할 분량밖에는 없고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모 병원 의사들과 식초를 연구하고 있는데, 의학저널이라는 잡지에 투고하기도 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이후 B씨가 구입 의사를 밝히자 A씨는 "5병을 구매해 5주간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얘기해 300만원짜리 식초 원액 5병과 20만원짜리 식초 2병을 판매하고 대금 124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A씨가 식품을 제조·가공해 판매하면서 영업등록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A씨는 유통업체에 판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방문한 소비자에게 바로 팔았으므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영업등록 대상이 아니라 관할 관청에 영업신고를 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1·2심은 A씨의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식초를 만드는 데 7년 가까운 제조 기간이 소요되므로 이를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다만 대법원은 A씨의 사기 혐의와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2심의 유죄 판결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업등록이 요구되는 식품제조·가공업과 구별해 영업신고가 요구되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개념과 요건 및 그 대상식품 등에 관해 명확하게 밝힌 첫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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