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전기차 구매 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세액공제(보조금)를 받을 수 있는 차종이 2023년 43종에서 2024년 19종으로 크게 줄었다. 2024년부터는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사용해야만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IRA 규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IRA는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깔려 있다. 미국 정부는 2023년 12월 사실상 모든 중국 기업을 해외우려기관(FEOC)으로 지정했다.(배터리완전정복 14회 참조)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이 반사 이익을 누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전해액과 분리막이다.
전해액과 분리막은 IRA 규정에서 '배터리 부품'에 해당한다. 당장 2024년부터 중국산 배터리 부품을 사용하는 전기차는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전해액에 들어가는 리튬염과 첨가제는 '핵심 광물'로 분류됐다. 2025년부터 FEOC의 핵심 광물을 사용할 경우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며 미국 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중국산 리튬염과 첨가제 사용도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IRA 시행으로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들은 전해액 공급망을 재편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전 세계 전해액의 약 70%를 중국 기업이 생산했다.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은 10% 남짓했다. 앞으로는 시장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산 전해액을 국산이 대체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해액(electrolyte)은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한다. 전해액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다. 베터리 전체 원가의 약 15%를 차지한다.
전해액은 배터리의 파워와 용량을 결정하는 양극재, 음극재에 비해 덜 주목받았다. 하지만 배터리의 안정적인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전해액의 확보가 필수다. 특히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연구되고 있는 실리콘 음극재, 리튬 메탈에서 전해액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전해액을 고체 전해질로 바꾼 전고체 배터리의 연구개발도 활발하다.
전해액은 크게 리튬염(Lithium salt), 유기 용매(solvent), 첨가제(additive)로 구성된다. 리튬염과 유기용매는 소금과 물의 관계와 같다. 리튬염은 전해질염으로 부르기도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에서는 전해질염이 용매에 녹은 액체 상태이기 때문에 전해액과 전해질이 혼용돼 사용된다. 금액 기준으로 리튬염이 전해액 원가의 약 40~5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용매는 30%, 첨가제가 20~30%를 구성한다.
리튬염은 리튬이온이 잘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온 전도도가 높아야 하며 혹한이나 고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화학적 특성도 우수해야 한다.
리튬염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는 리튬과 인산, 불소의 화합물인 육불화인산리튬(LiPF6)이다. LiPF6는 이온 전도도, 용해도, 화학적 안정성이 다른 재료에 비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해액 기업들은 LiPF6를 기본으로 F전해질(LiFSI), P전해질(LiPO2F2), D전해질(LiDFOP), B전해질(LiBOB) 등 특수 전해질을 혼합해 사용한다. 특수 전해질은 충·방전 효율을 높이고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등의 역할을 한다.
유기용매는 리튬염을 잘 녹여 리튬 이온들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리튬염을 잘 용해하기 위해 높은 유전율(permittivity)을 가져야 하며 리튬이온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해 점도는 낮아야 한다. 양극 및 음극과의 반응성은 낮아야 하고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성이어야 한다.
기업들은 고리형 카보네이트를 기본 용매로 하여 사슬형 카보네이트를 보조 용매로 혼합한다. 고리형에는 에틸렌 카보네이트(EC), 프로필렌 카보네이트(PC)가 있으며 사슬형 카보네이트로는 디메틸카보네이트(DMC)가 많이 쓰인다.
첨가제는 소량으로 첨가되는 물질로,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향상시키고 성능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양극용 첨가제와 음극용 첨가제로 나뉜다.
전해액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SEI(Solid Electrolyte Interphase.고체 전해질 계면)가 알맞게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SEI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SEI는 최초 충전 과정에서 음극 표면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얇은 보호 피막(passivation film)을 말한다. 전해액과 음극 물질의 화학 반응을 통해 형성된다. 이 피막은 리튬이온이 원활하게 이동하게 도와준다. 또 음극에서 나오는 전자를 막아 전해액이 더이상 분해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SEI 층이 균일하지 않으면 리튬이온의 흐름을 방해해 배터리의 성능을 떨어뜨린다. 또 SEI 층이 과도하게 형성되면 리튬 소모량이 증가하면서 충·방전 효율을 떨어뜨린다. 배터리 수명도 당연히 감소하게 된다. 반응성이 강한 리튬 금속을 음극에 사용할 경우에 특히 문제가 된다.
전해액 기업들은 주로 LiPF6를 기본으로 다양한 유기용매와 첨가제를 혼합해서 사용하고 있다. 유기용매와 첨가제를 어떻게 혼합하는지가 그 회사의 기술력과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전해액은 또 특성상 배터리 기업들과 함께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전해액 시장은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확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해액은 이차전지 용량 1기가와트시(GWh)당 약 1000t이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는 전 세계 전해액 시장 규모는 2022년 95억달러에서 2030년 215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2023년 3월 기준)
전해액은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초기에 일본 기업들이 강세를 보였으나 중국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며 현재는 중국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생산량의 71.3%를 중국 기업이 공급하고 있다. 뒤이어 일본이 15.8%이며 한국이 11.9%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기업별로 보면 중국의 틴츠(Tinci), 캡켐(Capchem), 궈타이화룽(GTHR, Guotai-Huarong ), 샨샨(Shanshan), BYD, 일본의 미쓰비시, 한국의 엔켐, 솔브레인, 동화일렉트로라이트 등이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틴츠가 41.8%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캡켐과 궈타이화룽이 각각 13.1%와 9.8%의 점유율로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전해액 기업들은 자국내뿐 아니라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엔켐은 7.1%로 4위를 달리고 있다. 엔켐은 LG에너지솔루션, SK온, 중국 CATL에 전해액을 납품하고 있다. 미쓰비시는 파나소닉에 전해액을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0년 3월 또다른 전해액 회사인 우베(Ube)와 합작사인 MU아이오닉솔루션을 설립하기도 했다.
전해액은 리튬염의 주요 소재인 LiPF6의 안정적인 확보가 필수적이다. LiPF6는 제조공정이 매우 까다로워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과거 일본 업체가 대부분 공급했으나 중국 기업들이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며 판도가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틴츠 DFD(둬푸둬)가 각각 LiPF6 전체의 31%와 28%를 공급하고 있다.(2022년 기준) 틴츠는 LiPF6를 내재화함으로써 중국은 물론 글로벌 전해액 시장에서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캡켐은 DFD로부터 LiFP6를 공급받고 있다.
엔켐은 중국의 DFD에 지분 15%를 확보하면서 LiPF6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왔다. IRA 규정에서 리튬염을 '핵심 광물'로 규정하고 있어 내재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엔켐은 새만금에 DFD, 중앙디앤엠(중앙첨단소재)과 함께 연간 5만t의 LiPF6 생산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도 연간 1만t의 리튬염 생산 공장을 설립한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후성이 LiPF6를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울산공장에서 연간 2000t의 LiPF6를 생산하고 있으며 2024년에 연간 2000t 규모의 공장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천보는 LiPF6에 혼합해 사용하는 F전해질, P전해질, D전해질, B전해질 등을 생산하고 있다. 전해액 첨가제는 IRA 규정에서 '핵심 광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중국산 사용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는 수요가 급증할 것에 대비해 새만금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전해액은 변질되기 쉽기 때문에 저온에서 보관해야 하고 유통기간도 짧다. 통상 생산 후 25도 이하에서 보관해야 하며 유통기한은 3~4개월에 불과하다. 또 화재 및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관과 이동도 까다롭다. 특수 용기에 담아서 이동해야 하며 냉장 기능이 있는 컨테이너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물류비 및 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가격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셀 생산 시설과 가까운 곳에 전해액 공장이 위치하게 된다. 고객사의 지근거리에서 제품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지가 전해액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함께 전해액 공장들의 현지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엔켐은 현재 미국(조지아), 중국(후저우·조장), 유럽(폴란드) 지역에 자체 전해액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IRA 시행에 따라 엔켐은 북미 생산 능력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2만t 규모의 조지아 공장을 4만t 규모로 확대하는 등 2025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총 30만t의 전해액 생산 시설을 보유할 계획이다.
솔브레인홀딩스의 미국법인 솔브레인MI는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연간 5만t 규모의 전해액 공장을 짓고 있다. 이 회사는 2025년에는 생산 능력을 10만t까지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양산되는 전해액은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합작사인 스타플러스에너지에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솔브레인은 미국 미시간주 노스빌에도 전해액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 납품하고 있다.
동화기업 계열사인 동화일렉트로라이트는 지난해 6월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전해질 공장을 착공했다. 연간 생산량은 8만6000t 규모로 동화일렉트로라이트의 국내외 공장 중 가장 큰 규모다. 이 회사는 논산, 중국 톈진, 말레이시아, 헝가리에도 전해액 공장을 두고 있다. 테네시는 LG에너지솔루션이 GM과 함께 설립한 합작사인 얼티엄셀즈의 두 번째 공장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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