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가 불황 속에서도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입량 기록을 갈아치운 위스키는 과거 고급 주종으로 여겨지며 국내 소비층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이른바 '알성비(알코올 대비 성능)'를 앞세운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이 개편되면서 국내 주류 소비자 사이에 빠르게 녹아드는 모습이다.
28일 신세계L&B에 따르면 올 한 해 전국 와인앤모어 46개 매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위스키는 지난 27일 기준 윌리엄그랜트앤선즈의 ‘그란츠 트리플우드(1ℓ)’ 제품으로 집계됐다. 그란츠 트리플우드는 버진 오크와 아메리칸 오크, 버번 리필 캐스크 등 세 가지 오크통에서 숙성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다. 1ℓ 제품임에도 1만원대 후반에 판매되는 저렴한 가격이 강점으로 부각되며 판매량 1위에 올랐다.
2위는 국민 싱글몰트 위스키로 꼽히는 ‘발베니 12년 더블우드’가 차지했다.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세계 최초로 버번 오크와 셰리 오크 두 가지 오크통 숙성 기법을 사용해 완성된 싱글몰트 위스키로, 국내에선 입문자용으로 입소문을 타며 위스키 오픈런 현상의 중심에 섰던 제품이다. 한국에서의 높은 인기로 인해 지난 10월에는 발베니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은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다.
미국 버번 위스키 ‘짐빔 화이트’가 발베니의 뒤를 이었다. 짐빔 화이트는 합리적인 가격 덕에 미국의 소주라고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술이다. 국내에서도 탄산수 등에 섞어 하이볼로 즐기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밖에 일본 블렌디드 위스키인 ‘산토리 가쿠빈’과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 스탠다드’ 하이볼 베이스로 사용되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10만원대 엔트리급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부터 국내 소비자들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위스키는 올해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견고한 시장 성장세를 이어갔다. 국내 위스키 시장의 성장세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단연 ‘하이볼(Highball)’이다. 다양한 술과 음료를 혼합해 만드는 하이볼은 청량감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진입 문턱이 높지 않은데다 집에서도 쉽고 다양하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제조가 가능해 다양한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며 새로운 주류문화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올해 위스키 수입 현황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위스키 수입량은 2만8391t으로 지난해 전체 수입량(2만7038t)을 이미 넘어서며 지난해에 이어 다시 최대치를 경신했다. 반면 수입액은 2억3708만달러(약 307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억4714만달러)보다 4%가량 감소했다. 올해 국내 위스키 소비가 고가의 제품보다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보급형 제품 중심으로 성장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신세계L&B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혼술·홈술을 즐기는 음용 층이 늘어난 데다 이른바 '알성비'를 따지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한 번 오픈해도 장기간 즐길 수 있는 위스키를 찾는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국내 위스키 시장은 내년에도 면세점 채널 등을 중심으로 높은 매출 신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와인앤모어 주종별 매출 집계에서는 저가의 발포주 카테고리가 지난해보다 66.8% 늘며 최근 주류업계에 부는 가성비 트렌드를 반영했다. 반면 팬데믹 기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와인 매출은 상대적으로 높은 몸값의 영향으로 ?17.9% 줄며 역성장했다. 다만 업계는 올해 와인 시장의 부진이 지난해 높은 성장세에 기인한 만큼 내년엔 홈파티와 클럽 문화의 인기를 토대로 샴페인 등 스파클링 와인을 중심으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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