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침체 여파로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1%대로 하락하겠지만 2024년에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거시경제 전문가이자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알려진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명예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2024년 일본 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선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토 교수는 최근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늪에 빠져 장기 경기침체를 겪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십년간 제자리를 맴돌던 물가와 임금이 반등할 기미를 보인다는 것이다. 2023년 일본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3.58% 기록하며 30년 만에 3%대를 넘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도 15개월 연속 일본은행(BOJ)의 물가 목표치인 2%를 웃돌았다.
이토 교수는 이 같은 흐름을 근거로 2024년에도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임금 인상과 금융완화정책의 변화 등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 거시경제를 움직인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온 이토 교수로부터 내년 일본의 경제 전망과 한국 경제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아래는 이토 교수와의 일문일답.
-2023년 일본 경제를 평가한다면
▲2023년 일본 경제는 국내외를 둘러싼 정치 불확실성과 중국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양상을 보이며 견조한 흐름을 지속했다. 물가와 임금도 2% 내외로 오르면서 과거 20년간 디플레이션에 빠져있던 일본 경제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경제의 활력도 (경기침체를 겪던)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일본 경제가 완전히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당장은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지만, 아직 디플레이션이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2023년 일본은 사상 초유의 엔저 사태를 겪었다. 엔저가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지
▲엔화 약세가 2023년 일본 기업의 실적을 끌어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도한 엔저로 해외 원자재 수입 비용이 늘면서 중소기업 중 일부는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를 무조건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낮았던 금리가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경제의 신진대사가 높아진 데 따른 결과로 보면 된다. 경제 구조가 바뀌기 시작하면 경쟁력 없는 기업은 사라지게 되고 이를 통해 일본 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다만 엔화 가치 하락으로 미일 간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일본의 환율이 미국 등 주요국에 극단적으로 반응하게 됐다는 것은 문제다. 급격한 환율변화는 기업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환율 문제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2024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어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IMF(국제통화기금)이 2023년 10월 예측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2024년 일본 경제가 1%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경기 침체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주요국들의 고금리로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도 글로벌 경제의 영향을 받아 경제성장률이 2023년 2%에서 2024년 1%로 소폭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도 일본 경제는 2024년에도 전반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도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려는 흐름이 지속되면서 이에 따른 메리트(물가 상승과 소비 증가)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가장 중요한 열쇠는 임금 인상이다. 디플레이션을 탈출하려면 임금 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생겨야 한다. 이 선순환이 정착될지의 여부는 앞으로 있을 춘투(재계와 노동계의 봄철 임금협상)에 달려있다. 임금 인상은 정책으로 유도하기 어렵다. 결국 기업의 경영자가 어떻게 대응하냐에 달려있는데 현재로서는 기업들도 임금 인상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두 번째로는 통화정책의 운용이다. 우선 과도한 금융 완화정책의 수준을 낮추기 위해 통화정책의 정상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섣불리 금리 인상을 추진하면 시장에 혼란이 일 위험도 있다. 큰 틀에서는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되 신중하게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BOJ의 마이너스 금리 철폐 시점은 언제로 예상하는가? 정책 철폐에 따라 경제에 미칠 영향은?
▲2024년 상반기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철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장관계자 중에서도 그렇게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다만 물가 상승률 추이에 따라 철폐 시점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물가가 둔화된다면 BOJ는 섣불리 금리를 중단할 이유가 줄어든다.
마이너스 금리가 철폐되면 시장은 일시적으로 혼란이 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금리 인상이 금융시장에 가져오는 긍정적인 영향도 크기에 일본 경제에 큰 혼란을 가져오진 않을 것이다. 금리가 완만하게 오르면 금융사들의 실적도 늘어날 것이며 주가도 뛸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17조엔을 들려 감세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해당 정책에 대한 평가는?
▲당장 경제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만 쫓기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내각만의 중장기적인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기시다 총리는 2022년 참의원 선거 이래로 내년까지 대규모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황금의 3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재정 개혁 등 큰 구조개혁 없이 정권을 이어왔다. 수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현재의 정책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저출산과 경기침체로 잠재성장률이 저하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향후 전망과 경제 회복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일본과 한국 모두 인구와 노동력의 성장세가 부진할 경우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생산성을 올리려면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혁신에 나서야 하며 이를 위한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혁신은 기존의 비즈니스 환경과 사회 구조를 깨뜨리면서까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GX(친환경 산업)이나 DX(디지털 전환)가 혁신 산업에 해당한다. 단기적으로는 신산업 분화에 투자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혁신에 필요한 인재 양성과 과학 기술 기반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장기불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대응책만 계속 내놓을 게 아니라 인재 육성과 같은 장기적인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전략을 짜야 한다. 물론 그간 한국은 혁신의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큰 성과를 거뒀다.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미·중 갈등과 중국의 경기 침체 등 글로벌 경제가 크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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