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ASML이 삼성전자와 연구·개발(R&D) 센터를 짓고 SK하이닉스와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은 한국 기업들과의 오랜 신뢰 관계가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인 한국과 손 잡으면 극자외선(EUV) 노광 기술 고도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도 작용했다.
ASML이 반도체 고객사와 해외에 R&D 센터를 공동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업계는 ASML이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인 한국에 투자하는 것을 두고 ASML의 차세대 노광 기술 확보에 한국과 손 잡는 게 유리할 것이란 전략적 판단에 근거했다고 본다. 삼성전자 역시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필요한 최신 EUV 활용 기술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어 초격차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번 R&D센터 건립이 차세대 노광 장비 개발과 관련한 국내 생태계 조성 및 성장에도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설비 소재 협력사 성장과 반도체 인재 육성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는 국가 반도체 경쟁력 확보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초미세 공정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어 ASML의 EUV 노광 장비 확보가 필수라 보고 2020년부터 ASML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0년과 지난해 네덜란드에 방문, ASML 경영진과 사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는 ASML 지분 158만407주(9월 말 기준, 0.4%)를 보유한 주주이기도 하다.
ASML도 2020년 11월 삼성전자 반도체 거점인 화성 캠퍼스에 방문하며 관계 증진에 힘썼다. 지난해 11월에는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가 경기도 화성에 한국 지사 사옥과 트레이닝 센터, 부품 수리 관련 재제조 센터를 짓는 '뉴 캠퍼스' 기공식에 참석해 이 회장과의 친분을 드러냈다.
SK하이닉스 역시 그간 ASML과의 관계를 공고히 한 결과, 이번에 EUV용 수소 가스 재활용 기술을 ASML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수소 가스는 EUV 장비를 사용할 때 기계 내부를 진공 상태로 유지할 뿐 아니라 오염원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쿨링 역할도 한다. 현재는 사용한 수소 가스를 소각하고 있지만 향후 이를 포집 후 연료 전지로 재활용해 전력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양사의 목표다.
SK하이닉스는 내년부터 ASML과 벨기에 반도체 연구소 '아이멕(IMEC)'이 공동 진행하는 차세대 EUV 개발 사업에도 함께한다. 인공지능(AI) 시대 고성능 반도체 개발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초미세 공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력을 통해 사용 전력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탄소 저감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ESG 관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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