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순방 실효성'을 따지는 정치권과 국민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엑스포 참패 열흘여 만에 순방에 나서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부담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최근까지 대통령실에서 근무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역시 "투자 유치를 위한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당장의 경제 실익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면서도 "(향후 순방은) 좀 더 구체적인 목적에 맞춰 짜여질 수 있다"며 변화 필요성을 시사했다.
취임 초기 꼬리표처럼 붙었던 '순방 리스크'는 사라졌다. 순방마다 터진 사건·사고에 귀국 후 나온 지지율은 매번 하락세를 면치 못했지만, 미국과 일본, 중동 빅3(사우디·아랍에미리트·카타르) 등과 정상외교에서 굵직한 실익을 챙기며 국민들의 기대감이 커진 영향이다.
참모들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한다. 단기적 '경제 실익'만을 위한 대통령의 휘발성 외교가 집중될 경우 미래세대를 위한 이른바 '글로벌 체인'을 수립하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맡았던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국내에서 보면 '한가하게 순방 다니느냐' 얘기할 수 있겠지만, 실제 해외에 나가보면 전쟁터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알아서 수출할 테니 정부가 간섭만 말아 달라'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완벽히 바뀌었다"는 분석에서도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돌격 앞으로' 식의 대통령 순방은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회담 기계'로 칭하고, 핵심 참모는 지난 9월 유엔총회 방문을 앞두고 "한 달간 60개 이상의 양자회담을 한 정상은 지난 100년간 외교사에 없을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한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야권이 똘똘 뭉쳐 지난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며 578억원에 달하는 해외 순방 비용을 지적하고 '수박 겉핥기'식이라 비난한 것도 이제 이상하지만은 않다.
대통령 취임 후 수십 번의 해외 순방을 '엑스포 참패'로만 결부 지어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윤 대통령이 수천 번 외친 '가치 외교'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과 외교부 등 외교협상을 수행하는 모든 기관이 눈치 보며 말을 아낀다면 엑스포와 같은 제2, 제3의 외교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외교' 문제가 '경제·민생·물가'에 이어 부정 평가 이유 중 두 번째로 높은 요인이 된 점도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표출한 외교력 불신이, 자칫 윤 정부 국정운영 전반으로 확대될까 우려된다.
지난주 부산에서의 떡볶이 회동에 불려간 대기업 총수 중 일부는 이번 순방에도 동행해 벌써 시끄럽다. 연말, 연초를 맞아 국내외 현장을 찾아다니고 수천 장의 사업계획서를 점검해야 하는 이들 역시 대통령의 '주머니 속 공깃돌'로 치부되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날부터 3박 5일간 이어질 네덜란드 국빈 방문이 집권 3년 차를 준비하는 윤 정부 '세일즈 외교'의 새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극한 대치가 이어지는 예산 정국, 부처 개각과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에 따른 인사청문회,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까지 모두 뒤로 한 채 나서는 순방이다. 반도체 산업을 지목하며 "우리의 생사가 걸렸다"고 강조하는 대통령이 들고 올 결과물을 정치권과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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