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전쟁 등으로 비용압력이 누증되고 올해 중반 이후 추가적인 공급충격이 크게 나타나면서 우리나라의 디스인플레이션(물가 둔화)이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팬데믹 이후 비용상승 충격을 완충했던 전기·가스요금 인상폭 제한, 유류세 인하 등과 같은 정부의 정책지원은 관련 요금 인상 시기 이연으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1일 '주요국 물가 상황 비교' 보고서에서 "하반기 들어 유가·환율·농산물가격 상승, 공공요금 인상 등을 계기로 최근 주류, 여행·숙박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났다"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중반 정점 이후 1년간 뚜렷한 둔화 흐름을 이어오다가 올해 중반부터 국제유가 상승, 기저효과 소멸 등으로 차례로 반등했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0.7%포인트 반등한 후 10월에는 3.2%로 다시 낮아졌다.
반면 정점이 지난해 7월로 미국보다 한 달 늦었던 우리나라는 8월부터 3개월간 1.5%포인트 높아져 3.8%를 기록했는데 11월에는 다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지역은 정점이 지난해 10월로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나면서 최근까지 둔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둔화돼 왔으나 주요국과 달리 반등 시점에 농산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10월 상승률은 미국과 유로지역에 비해 높아졌다.
한은은 "10월 현재 최근 3개월간의 상승률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2.0%로 미국(1.1%)과 유로지역(0.9%)을 상당폭 웃돌았다"며 "품목별로 보면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농산물가격이 큰 폭 상승하면서 최근 3개월간 오름폭의 상당 부분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의 경우 주요 선진국에서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3%대 초반으로 최근 다소 더딘 둔화 흐름을 나타내고 있지만 10월 현재 4%대인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주요국 근원물가 상승률의 더딘 둔화 흐름에는 국가별로 차별화된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공급충격에 따른 영향이 상당폭 해소되면서 상품가격의 오름세가 크게 약화됐으나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와 타이트한 노동시장 등으로 서비스물가 상승률은 더디게 둔화하고 있다.
유로지역은 미약한 성장세에도 공급충격의 이차효과 지속, 높은 임금상승률 등에 따른 서비스물가의 높은 오름세가 근원인플레이션의 둔화 흐름을 제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요국과 달리 국내 수요압력 약화 등으로 서비스물가 상승률은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누적된 비용압력의 영향으로 상품가격 상승률의 둔화 흐름은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은은 "일각에서는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용량·중량·개수를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나 원재료 함량을 줄이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기·가스요금은 주요국에 비해 인상폭이 제한되면서 지난해 소비자물가 급등을 완화한 측면이 있지만 인상 시기가 이연되면서 파급영향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현행 유류세 인하폭(휘발유 25%, 경유 37%)이 축소될 경우 물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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