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1일(현지시간)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스텔란티스와 중국의 배터리 기업 CATL은 유럽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을 설립키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두 회사는 50대50의 지분비율로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계약에 따라 CATL은 테슬라, 폭스바겐, 현대차에 이어 스텔란티스에도 LFP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글로벌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내에만 머물렀던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가 11월 초에 발표한 비(非)중국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조사 결과(1~9월) LG에너지솔루션과 CATL의 점유율은 28.1%로 동률을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해 대비 49.2% 급성장했으나 CATL은 이보다도 더 높은 104.9%의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기차 가격 경쟁에 돌입하면서 저렴하면서도 안전성을 갖춘 LFP 배터리 채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LFP 특허가 2022년도에 만료되며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LFP 배터리는 양극 물질로 리튬인산철(LiFePO4)을 사용하는 배터리를 말한다. 이 양극 물질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2019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존 구디너프 교수(2022년 별세)다. 구디너프 교수는 1995년 미국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교에 재직 중일 때 제자 아루무감 만띠람(Arumugam Manthiram) 박사와 함께 LFP 양극 물질을 처음 발견하고 특허를 등록했다. 구디너프 교수는 리튬코발트산화물(LCO) 양극 물질에 이어 LFP까지 발견했기 리튬이온배터리 전반에 끼친 그의 공로는 크다.
LFP 양극재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안전성'을 들 수 있다. 양극재를 구조에 따라 분류할 때 크게 층상(layered), 스피넬(Spinel), 올리빈(Olivine) 구조로 나눈다. 리튬코발트산화물(LCO)과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는 층상구조를 가지며, 리튬망간산화물(LMO) 양극재는 스피넬, LFP 양극재는 올린빈 구조를 갖는다.
층상구조는 충·방전 시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전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층(layer) 사이에 리튬이온의 삽입과 탈리가 반복된다. 리튬 이온이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리튬이 빠져나간 자리에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구조가 불안전하다. 스피넬 구조는 첨정석(Spinel) 결정구조와 유사한 데서 유래됐다. 층상 구조가 2차원 통로를 가지고 있다면 스피넬 구조는 3차원 통로를 갖고 있어 다양한 통로를 통해 리튬이온의 삽입이 가능하고 안정성이 높다.
올리빈 구조는 감람석(Olivne)과 비슷한 정육면체의 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올리빈의 어원은 라틴어 '올리바(oliva)'인데 이는 이 돌이 올리브색을 띠고 있어서다. 올리빈 구조의 LFP 양극재는 산소(O)와 인(P)이 강력히 결합해 있어 리튬 이온이 모두 빠져나가도 구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안정성을 유지하고 발화 위험이 적다. 하지만 LFP 양극재는 저장할 수 있는 리튬이온의 양이 적고 LCO(3.7V)에 비해 전압(3.2V)이 낮기 때문에 에너지밀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LFP의 이론상 에너지 용량은 약 170 밀리암페어시(mAh/g)로, LCO(274mAh/g), NCM( 275mAh/g)에 비해 적다. 다만 LFP 양극재의 실제 에너지 용량은 약 150mAh/g 으로 이론상 용량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구조적 안정성에 기인한다. LCO는 리튬이온이 탈리되면 구조적 안정성이 취약해지면서 실제로는 150mAh/g의 용량만 구현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니켈 성분을 추가한 NCM 양극재가 개발됐다.
LFP 양극 물질의 또 다른 장점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NCM 양극재의 경우 가격이 비싼 코발트, 니켈 등을 사용한다. 코발트의 경우에는 채굴 과정에서 아동 인권 문제의 소지도 있다. 반면, LFP는 매장량이 풍부한 철과 인산을 주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같은 이슈에서 자유롭다. 삼성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기준 LFP 양극재의 kg당 판가는 16달러 수준이고 NCM622 삼원계 양극재는 40달러대, NCM811 삼원계 양극재는 60달러대로 추정된다. LFP 양극재는 NCM622에 비해 약 60% 저렴한 수준이다.
LFP의 핵심 특허는 앞서 구디너프 교수 이외에 캐나다 국영 수력발전소인 하이드로퀘벡(Hydro-Qu?BEC)과 몬트리올대학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가 보유하고 있다.
구디너프 교수가 처음 안전하고 독성이 없는 LFP 물질을 발견했으나 이온 전도성이 좋지 않았다. 이후 프랑스의 배터리 과학자인 미셸 아르망(Michel Armand)이 구디너프 교수에게 협력을 제안했다. 아르망은 하이드로 퀘벡, 몬트리올 대학교의 과학자들과 함께 LFP에 탄소 코팅을 하면 전도성이 향상된다는 점을 발견하고 후속 특허를 등록했다. 이 연구는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제정적 지원을 받아 진행됐기 때문에 이곳도 함께 특허권을 보유하게 됐다. LFP 양극재의 핵심 특허는 크게 LFP 양극 물질 조성 및 LFP 탄소 코팅, LFP 탄소코팅 공정 3가지로 구성됐다.
2003년 하이드로퀘벡과 몬트리올대학은 포스텍(Phostech)에 LFP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최초로 부여했다. 이후 독일 화학기업인 수드케미(Sud-Chemie)가 포스텍을 인수하며 특허권은 수드케미로 넘어갔다. 수드케미는 2011년 하이드로퀘벡, 몬트리올대학, CNRS와 함께 LFP 특허권을 판매하기 위한 컨소시엄(LiPO4+C)을 구성했다. 이후 이듬해인 2012년 영국 배터리 기업인 존슨 매티(Johson Mattey)가 수드케미의 LFP 특허권을 양도받았다.
구디너프 교수와 LFP컨소시엄은 자신들의 특허를 보호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NTT와 특허 소송을 통해 3000만 달러를 배상받기도 했다. 대만 배터리 기업 앨리스(Aleese)는 LFP 매출의 10%를 특허료로 지불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2003년 특허를 신청해 2008년 9월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신에너지차(전기차)를 미래 먹거리로 내세운 중국은 이 특허를 무효화해버린다. 2010년 중국배터리공업협회가 국가 특허국 재심위원회에 LFP 특허 무효 소송을 재기했고 1년후 재심위는 무효 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 이후 비야디(BYD), CATL 등 중국 기업들은 자유롭게 LFP 배터리를 만들어 자국 전기차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의 LFP 배터리는 원재료 자체가 저렴한데다 특허료까지 지불하지 않으니 가격 경쟁력은 배가됐다. 물론 중국 특허국의 무효 판결은 중국내에서만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해외 시장 진출은 제약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LFP 특허 유효 기간이 끝나며 상황이 바뀌고 있다. LFP 특허중 구디너프 교수가 보유한 원료 조성에 관한 내용은 2017년 이미 만료됐다. 이후 LFP 특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카본 코팅 기술은 2022년 만료됐다. 중국 LFP 배터리 기업들이 해외 진출시 가장 큰 장벽이었던 특허 문제가 사라진 것이다. 앞서 중국 양극재 점유율 1위 업체인 다이나노닉스(Dynanonics)는 2019년 11월 존슨매티 외 3개사 컨소시엄과 LFP 사용권을 취득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LFP 카본코팅 공정 기술은 2024년 만료 예정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우회가 가능하다. 중국 기업들도 10여년간 LFP 배터리를 개발하면서 다양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2001년 MIT공대의 대만 출신 옛밍창(Yet-Ming Chiang) 교수는 릭 플롭(Ric Fulop), 바트 라일리(Bart Riley)와 함께 미국에서 A123시스템을 설립하고 LFP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옛밍창은 2002년 네이처지에 하이드로퀘벡 등이 보유한 특허와는 다른 방식으로 LFP 양극재의 전도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발표했다. LFP 양극물질을 도핑하거나 니오븀(niobium)이라는 원소를 포함한 금속화합물을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A123은 이를 나노인산(Nanophosphate)이라고 불렀다. 이 특허는 이후 하이드로퀘벡과의 특허 소송에서 승소하며 새로운 기술로 인정받았다.
A123은 블랙앤데커 전동공구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계약하는 등 초기 성과를 냈다. A123은 곧이어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클라이슬러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2억49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2009년 9월에는 나스닥에 상장하며 3억9000만 달러를 조달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클라이슬러가 전기차 출시 계획을 취소하고 대규모 리콜 사태까지 발생하며 A123은 파산을 신청했다. A123은 2013년 1월 중국 자동차 부품 기업인 완샹그룹에 인수됐다.
당시 미국의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는 결국 이를 승인했다. 이후 약 10년이 지나도록 미국에서는 이렇다할 배터리 기업이 등장하지 못했다. 옛밍창 교수는 2010년 24M테크놀로지라는 새로운 배터리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중국산 저가 배터리'로만 치부되던 LFP 배터리는 2020년 배터리데이에서 LFP 탑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모델3에 처음 LFP 배터리를 탑재하기 시작해 점점 대상 차종을 확대했다. 2020년 첫 출시 당시 LFP 비중은 6%에 불과했으나 2022년엔 전체 판매량의 37%까지 올랐다.
포드, 벤츠, 폭스바겐, 현대차 등 글로벌 자동차들도 LFP 배터리 전기차를 출시했거나 출시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아담스인텔리전스(Adamas Intelligence)에 따르면 LFP 배터리의 시장점유율은 2021년 1월 17%에서 2022년 1월 26%, 2022년 9월 31%까지 급상승했다.
이 수치는 올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NE리서치는 2023년 1~6월 양극재 적재량 64만5000톤중 LFP가 28만8000톤으로 44.6%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LFP 배터리의 약진에는 몇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전기차 시장이 초기 얼리어답터 중심에서 대중화 시대로 전환되면서 보급형 자동차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제조사들이 보다 저렴한 자동차를 출시할 유인이 생겼고 그 결과 LFP배터리를 찾게 됐다. 전기차 시장이 대중화되면서 전기차 구매시 안정성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LFP 시장 확대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마침 LFP 특허가 만료되면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의 장벽도 사라졌다. CATL뿐 아니라 주로 자사 전기차에만 배터리를 공급하던 BYD도 2023년 들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9월 비중국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에서 BYD의 점유율은 1.8%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도(0.4%)보다 539% 늘어난 수치다.
에너지밀도가 낮다는 LFP의 기술적 한계도 극복하고 있다. CATL은 셀투팩(Cell to Pack)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셀(Cell) → 모듈(Module) → 팩(Pack) 순서로 만들어지는데 CATL은 중간 모듈 단계를 없앴다. 이를 통해 단위 면적당 더 많은 배터리셀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밀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은 LFP에 망간(Mn)을 추가한 LMFP(니켈망간인산철)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이 경우 전압이 기존 3.2V에서 4.1V로 올라가면서 전체 에너지밀도는 상승하게 된다. LMFP 양극물질을 적용한 CATL의 M3P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240Wh/kg으로 기존 LFP배터리(210Wh/kg)보다 약 20% 향상됐다. LMFP 배터리는 이에 더해 저온 및 고온 특성도 향상됐다. LFP 배터리는 저온 성능이 좋지 않아 특히 겨울철에 취약했다.
CATL은 지난 8월 10분 충전으로 400km를 주행할 수 있는 새로운 '셴싱(Shenxing)' 배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배터리는 양극에 LMFP와 NCM을 혼합하고 음극은 흑연을 특수 코팅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밀도와 충전속도를 향상시킨 것으로 파악된다.
당초 한국 기업들은 LFP 배터리가 일부 저가형 전기차에만 탑재되고 결국 삼원계가 시장을 주류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했다. LFP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개선이 어려워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을 것이고 본 것이다.
하지만 LFP 배터리 시장 확대로 위협을 느낀 국내 기업들은 연이어 LFP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과 볼륨(Volume) 경쟁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LFP 시장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미 LFP 배터리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배터리 3사는 우선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를 출시하고 이후 전기차용으로도 내놓을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양산 시기를 2026년으로 잡았다. SK온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바로 LFP 배터리를 출시하지 못하는 것은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소재별로 공급망을 갖추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양극재 기업인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2024년에야 3000톤 규모의 LFP 파일럿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광물 채굴부터 셀 제조까지 LFP 배터리 생산 체계를 갖추어 놓았다. 이를 국내 기업들이 단시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LFP의 주요 원료인 탄산리튬과 인산철 전구체를 수직계열화하는 방법으로 가격 경쟁력도 갖추었다.
대외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발간한 '중국 LFP 배터리 공급망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 기업의 LFP 공급망 구축에는 탄산리튬, 인산철 전구체 등 기존 삼원계 배터리 공급망과 다른 추가적인 원자재 조달이 필요하며 단가를 낮추기 위한 대구ㅠ모 물량 주문과 이를 소화할 수 있는 LFP 배터리 생산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내 기업들은 삼원계 배터리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9월 발간한 'LFP 공성 2차전' 보고서에서 "한국이 단시간내에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LFP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LFP가 아닌 망간계 제품(코발트 프리 NMx, 망간리치 LLO 등)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넓히거나 ESS 시장에서 프로젝트성으로 시장 수요에 대응하면서 자체 생태계 구축과 제품 경쟁력을 키워가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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