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현직 부장검사가 언론 기고문을 통해 공수처 내부의 정치 편향성과 인사 전횡을 폭로하고 나섰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된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에 대해 일정한 방향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수사를 지휘했다는 취지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해당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여운국 차장은 개인 자격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명석 공수처 인권수사정책관(부장검사)은 30일자 법률신문 '김명석 부장검사의 목요일언' 코너에 기고한 '정치적 편향과 인사의 전횡'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검사 17년, 변호사 5년을 거쳐 2022년 10월 공수처 부장검사로 임명돼 근무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소회를 말하자면 정치적 편향과 인사의 전횡이란 두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초 '검찰총장 찍어내기 감찰 의혹'에 대해 검찰에서 검찰 간부 2명의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해 공수처로 이첩했다"라며 "이 사건은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민감한 사건인데도 차장검사는 필자에게 수사 경험이 없는 어린 A 검사에게 배당하라고 지시했다. 이상했다. 잠시 후 필자와 A 검사를 부르더니 '이게 무슨 직권남용이냐'면서 자신이 미리 찾아놓은 판례 등 직권남용의 성립을 부정하는 자료들을 A 검사에게 건네주며 검토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필자도 검사 17년 하면서 별꼴을 다 겪어봤지만 깜짝 놀랐다"고 했다.
여 차장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범죄 불성립 취지의 검토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김 부장검사가 주장한 사건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표적인 '친정부' 성향의 검사로 분류됐던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박은정 전 법무부 감찰담당관 사건이다. 두 사람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던 시절 법무부가 절차를 위반해 윤 당시 총장을 감찰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해 수사를 받았다.
김 부장검사는 또 "필자가 임명되기 전의 일이다"라며 "'검찰총장의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사건의 경우 입건 여부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면 다른 검사에게 검토를 시키고, 또 부정적 의견을 내면 또 다른 검사에게 검토를 시키는 식으로 여러 검사를 거치다가 '입건 명령'이라도 하겠다고 성화를 부려 어쩔 수 없이 입건을 했다고 하길래, 농담인 줄 알았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대통령이 총장이었던 시절 징계 사유 중 하나로 들었던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사건에 대해 여러 검사들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여 차장이 입건해 수사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를 또 다른 공수처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었다는 취지다.
김 부장검사는 "필자는 위 두 사건 모두 수사를 하지 않아 범죄 성립 여부를 알지 못하고, 수사 결과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이견이 없다"라며 "그런데 아직 수사에 착수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미리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맞추도록 위와 같은 언행을 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는 공수처의 인사 문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공수처 구성원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인력시장에 나와 있는 잡부와 같은 심정으로 지낸다"라며 "언제 어디로 팔려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날 출근을 해보면 전날 퇴근 이후에 인사명령이 공지돼 있고, 그러한 공지가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뜬다. 이 부서에서 사람들을 빼서 저 부서로 우르르 몰았다가, 또 다른 데로 뺀다"고 했다.
그는 "사기업에서도 이렇게 하면 온전하지 못할 거 같은데, 공무원 조직에서 이런 무원칙 무기준의 인사는 상상해 본 적도 없어서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김 부장검사는 김 처장과 여 차장이 모두 판사 출신으로 수사 경험이 없어 제대로 수사 방향을 잡아줄 수 없음을 지적했다. 또 김 처장의 국정감사장 발언을 들어 '유체 이탈' 화법이라고 저격했다.
그는 "공수처의 문제는 이뿐만 아닌 듯하다"라며 "평검사 좀 하다가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던 사람들이 부장검사로 와서 수사를 지휘한다. 수사 경험도 길지 않은데 지휘 경험은 전혀 없으니 배가 산으로 가고 시끄럽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경찰관 한명 구속해 보겠다고 1년 내내 조직 전체가 매달려 초가삼간을 태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들을 징계 청구했다가 기각되기도 하고, 멀쩡한 피의자를 자살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기도 하고, 검찰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코미디 같은 일들이 마구 일어나는데, 방향을 잡아줘야 할 처장, 차장 또한 경험이 없으니 잘하는 건 줄 안다"라며 "계속 영장이 기각되는 건 이러한 연유이다. 총체적 난국이다"라고 진단했다.
김 부장검사는 "이런 일을 3년간 겪고 산 공수처 구성원들은 마음의 병을 얻은 것처럼 시름시름하다. 대부분은 이미 그만뒀다"라며 "그런데도 국정감사장에서는 '수사는 위아래가 혼연일체가 돼야 가능한 것이다'는 등의 유체 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걸 보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라고 했다.
김 부장검사는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30기로 수료했다. 2001년 창원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대전지검 논산지청, 청주지검, 인천지검, 광주지검, 서울동부지검, 의정부지검 등을 거치며 주로 강력부에서 조직폭력, 마약 사건을 수사했다.
2015년 의정부지검 부부장검사로 승진했고, 2016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를 거쳐 2017년 검찰을 떠났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10월 공수처 부장검사로 임명돼 수사1부장검사를 맡았다가, 올해 10월 인권수사정책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수처는 29일 오후 기자단에 보낸 공지를 통해 "김 처장은 오늘 김 부장검사가 기고 내용을 처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채 법률신문에 게재하게 된 과정의 규정 위반 행위에 대해 감찰을 실시할 것을 인권감찰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김 부장검사가 직무와 관련된 사항에 관해 검사의 직함을 사용해 의견을 기고·발표할 때 처장에게 미리 신고하도록 정한 공수처 검사 윤리규정이 있음에도 기고 내용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김 부장검사가 기고를 하는 과정에서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관련 법과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면 징계위원회 회부 등 엄정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수처는 "여운국 차장이 김 부장검사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공표해 명예를 훼손하고 공무상비밀을 누설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 30일 김 부장검사를 타수사기관에 고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 차장은 "공수처 수사 및 운영 책임자 중 한명으로서 조직 구성원의 일탈을 예방하지 못한 데 대해선 지휘 책임을 통감하지만, 불명확한 타인의 전언이나 근거 없는 내용을 최소한의 사실확인도 없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공무상비밀을 누설해 개인과 기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린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판단, 형사고소를 결정했다"고 고소를 결정한 배경을 밝혔다.
김 처장과 여 차장은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대단히 송구하다"며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해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국민께 대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처장은 내년 1월 20일, 여 차장은 내년 1월 28일 각각 임기가 만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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