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들여다 보니… 물가 상승에 저소득층은 휘청, 고소득층은 꾸준히 소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장모씨(41·남)는 순댓국을 좋아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달 20일 나오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를 아껴서 일주일에 3번 정도 먹으러 갔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횟수를 1번으로 줄였다. 7000~8000원 하던 순댓국이 1만원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아껴 쓴다고 하는데도 기초생활수급비로 받은 90만원은 3주 만에 동이 난다. 지난해만 해도 순댓국을 먹고 PC방을 가도 돈이 금방 떨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장씨는 "물가가 올라서 먹고 싶은 걸 사 먹지 못하고 있다"라며 "미리 사놓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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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금융업 종사자 김모씨(45·여)는 지난달 자녀의 학원비를 37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늘렸다.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 과목을 1대 1 과외로 바꿨기 때문이다. 매달 80만원씩 더 나가지만 괜찮다. 쇼핑에서 쓰는 돈을 아끼면 된다. 지난해 10월 기준 800만원 정도 썼던 쇼핑비를 지난달에는 380만원으로 줄였다. 김씨는 "지난해 보석류를 구매하면서 갑자기 큰 비용이 나갔지, 딱히 쇼핑에 쓰는 돈을 줄이지는 않았다"며 "아이 교육비에 더 투자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가계부를 직접 비교하면 장씨와 김씨의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장씨는 지난달 기초생활수급비 90만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30만원을 쪽방 월세로 내고 나머지 돈을 식비나 생활용품비, 여가비 등에 썼다. 외식비는 20만원, 라면·반찬 20만원, 생활용품비 5만원, 교통비 5만원, 휴대전화 요금 5만원, PC방 요금 5만원 등이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 항목별로 비용을 줄이기 쉽지 않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PC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장씨는 PC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지만, 최근에는 방문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집에 컴퓨터와 TV가 없는 장씨는 PC방에서 컴퓨터로 해결해야 할 문서 작업을 하거나 미뤄뒀던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한다.


장씨는 대신 병원을 바꾸기로 했다. 장씨는 심장과 허리가 좋지 않아 매일 병원을 가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지하철 기본요금이 1250원에서 1400원으로 오르면서 병원에 가는 교통비조차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장씨는 꼼꼼하게 진찰해주던 병원 대신 집 주변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장씨는 "교통비라도 줄이지 않는다면 예산이 빠듯하다"며 "약만 잘 탈 수 있다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지 않겠나"고 말했다.


반면 김씨의 가계부는 비교적 높은 금액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지난달 월급으로 1450만원을 받은 김씨는 교육비로 450만원을 사용했다. 이외 쇼핑 명목으로 380만원, 헬스장 비용으로 13만원 정도를 사용했다. 아울러 미래를 위해 연금 180만원, 적금 700만원을 지출했다. 김씨는 "명품과 의류, 주유비 등 물가가 확실히 올랐다"라면서도 "물가 상승 때문에 딱히 소비를 포기한 영역은 없다. 좋아하는 장어나 샤인머스캣 같은 과일도 꾸준히 사 먹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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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오르지만 모두가 같은 고통을 겪는 건 아니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물가 상승에 맞춰 허리띠를 더 졸라맸지만, 소득 수준이 높은 경우 물가 상승과 상관없이 소비 지출을 유지했다.


지난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 3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은 123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7% 감소했다. 가정용품·가사서비스(-19.7%), 교육(-13.9%), 통신(-10.4%), 교통(-8.1%), 주류·담배(-7.2%) 등 부문에서 큰 폭으로 소비 지출이 줄었다. 특히 3분기 기준 가공식품 및 외식 물가 상승률이 각각 6.3%, 5.4% 오르는 등 생활과 밀접한 물가가 오르자 소득 1분위 가구의 지갑이 닫힌 셈이다.


반면 1분위 이외 소득 분위 가구의 소비 지출은 오히려 늘었다. 3분기 기준 2, 3, 4, 5분위의 소비 지출은 각각 전년 대비 2.9%, 3.3%, 3.1%, 6.5% 상승했다. 소득도 1분위를 제외한 나머지 가구에서 더 크게 증가하면서 1분위와 5분위 간 처분가능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1분위의 처분가능소득은 90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6% 늘어난 반면, 5분위 가구는 3.1% 늘어난 831만9000원으로 집계되는 등 증가율에서 5배 이상 차이가 났다. 처분가능소득이란 한 가구에서 벌어들인 돈 중에서 이자와 세금 등을 빼고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을 말한다.


앞으로 물가는 더 올라 경제적 약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8개 해외 주요 투자은행(바클레이즈,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씨티, 골드만삭스, JP모건, HSBC, 노무라, UBS)이 지난달 말 발표한 보고서의 내년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평균 2.4%로 나타났다. 지난 9월 발표된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평균이 2.2%였는데 한 달 사이 0.2%나 높아진 것이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19일 통화정책방향에서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높아졌다"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수준(2%)에 수렴하려는 시기도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가 오르면 자산의 명목 가치도 오르지만, 저소득층은 그 혜택을 못 누리면서 소비 부담은 커진다"라며 "금융당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기도 어려워서 물가 상승 압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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