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5년차…'따돌림·차별·무시' 더 교묘해진 수법

올해 1~10월 7824건 접수
따돌림·차별·무시 등 증가
명확한 증거 확보 어려워
가해자 처벌 등 보완 입법 필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5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신고 건수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교묘한 수법의 따돌림·차별·무시 등 입증이 어려운 유형의 괴롭힘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는 현행법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과 처벌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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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인정받아도…뒤이은 은밀한 따돌림

29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모두 7824건이 접수됐다. 연도별 접수 건수는 2019년(7월 16일 법 시행 이후) 2130건,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 8961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유형별 누적 건수(중복신고 가능)는 폭언(1만4102건), 기타(1만2231건), 부당 인사(5902건), 따돌림·험담(4634건), 차별(1499건), 업무 미부여(1189건), 감시(1145건), 폭행(1065건), 강요(582건), 사적용무지시(434건) 순이었다. 기타 유형으로는 공격적인 말투·눈빛, 공적 물품 미지급, 인수인계 미이행 등이 포함돼 있다. 유형별 신고 비중을 보면 2019년에는 폭언(45%)과 부당인사(25%)가 높았으나, 올해는 각각 31%, 13%로 낮아졌다. 반대로 기타는 5.9%에서 30%로, 차별은 2.2%에서 4.2%로 높아졌다. 법 시행 초기까지만 해도 폭언이 직장 내 갑질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명확한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괴롭힘 유형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예전보다 더 은밀하고 주도면밀해졌다. 정부 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았음에도 오히려 신고자가 눈치를 보거나 퇴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신고된 내용을 보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A씨는 직장 상사 B씨가 매일같이 담배·커피 등 사적 심부름을 시켰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후 B씨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결국 퇴사하게 됐다. 직장인 C씨도 폭언과 따돌림을 일삼는 직장상사 D씨를 인사총무팀에 신고했지만, 회사는 한 달 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 번 더 신고하려고 하자 “이거 이슈화되면 회사 못 다녀”라고 압박이 들어왔다. C씨는 결국 고용노동부에 직접 신고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았지만, 회사에서는 ‘별것 아닌 일로 신고해 남의 인생을 망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주현 공인노무사는 “최근에는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보다 따돌림, 뒷담화, 익명 악소문 유포 등 판단이 매우 모호한 제보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녹취, 메신저, 전화 등을 통해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꼭 당사자와의 직접 대화가 아니더라도 주변 동료의 대화·연락 등을 수집하는 방법으로도 괴롭힘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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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한계에 무용론 팽배…"실효성 보완해야"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더라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형사처벌 조항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뿐이다. 이를 위반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다른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시정지시나 과태료 부과 정도만 가능하다. 실제 올해 1월~10월 신고접수 처리 결과를 살펴보면, 개선 지도 509건, 검찰 송치 111건(43건 기소), 취하 1368건, 기타(과태료·법적용제외·동일민원·불출석·고소접수 등) 5456건, 처리 중 380건으로 집계됐다. 5인 미만 사업장,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등은 아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사 범위 확대, 피해자 보호 강화, 가해자 벌칙 신설 등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총 25건 발의돼있지만,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무용론이 확산되면서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리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4∼11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직문화에 대해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점수가 낮게 나타난 문항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신고자의 신원이 노출될 것 같다’(51.7점)로, 지난해 64.2점보다 12.5점 하락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이후 복귀해서 정상적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54.6점),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인정됐을 때 행위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54.7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징계·따돌림·소문 등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55.7점)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 설문 조사는 휴식·평가·위계·소통, 괴롭힘 예방·대응·사후 조치 등 7개 영역 총 25개 문항에 대해 점수(0∼100점)를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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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사회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하는 측면이 있다. 매년 필수교육을 실시하고, 사용자 측의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라며 “법 테두리 밖에 있는 노동자들을 줄여나가는 방안 역시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당장 현행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으니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심각해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면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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