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와 경기 침체 여파로 국내 주요 대형마트에 ‘리퍼브’ 상품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 완전히 새것은 아니지만, 쓰는 데 무리가 없는 제품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에 소비자가 몰리면서다. 각 대형마트는 전국에 리퍼브 매장을 신규 오픈하는 한편, 기존 가전과 가구에 집중됐던 상품군을 생활용품, 패션, 잡화 등으로 확대하며 소비자 발길을 붙잡고 있다.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롯데마트의 리퍼브 상품 누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배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현재 주엽점과 신갈점을 포함해 전국 23개 매장에서 리퍼브숍 브랜드 4개(올랜드&올소, 그리니, 두원, 줌마켓)를 운영하고 있다. 같은 기간 홈플러스도 전국 33개 리퍼브숍 ‘어썸마켓’ 등을 통한 리퍼브 상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가량 뛰었다. 이마트는 최근 오픈한 반야월점(6호점)의 리퍼브숍 매출이 나머지 5개 매장(의왕, 일산, 펜타포트, 동구미, 과천점)의 매출을 2배 앞질렀다. 이마트는 지난해 처음으로 의왕점에 리퍼브숍 ‘두원’을 선보인 이후, 올해 9월 반야월점까지 오픈하며 전체 리퍼브숍을 6곳으로 늘렸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고물가 현상이 장기화하다 보니 가격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고객들이 부쩍 리퍼브 매장을 많이 찾고 있다"며 "리퍼브 상품은 중고품처럼 낡거나 오래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저렴한 가격을 주고 구매하려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리퍼브 상품은 ‘새로 꾸민다’는 뜻의 ‘refurbish’의 줄임 말로 이월 제품, 매장 전시품, 유통 기한이 임박한 제품, 고객 변심으로 배송 직후 반품된 제품, 유통과 제조 과정에서 흠집이 난 제품 등을 일컫는다. 이미 사용한 중고품이 아니기에 제품 컨디션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이 정상가 대비 많게는 90%까지 저렴하다. 기존에는 소형 매장에 가전과 가구만을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리퍼브 상품을 찾는 이들이 늘자 상품군이 생활용품, 주방용품, 패션, 잡화 등으로 다양화됐고 임대료를 받고 매장에 공식 오픈하는 대형마트도 늘었다.
이에 유통업계도 연내 리퍼브숍을 신규 오픈하거나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등 고객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주요 대형마트 가운데 리퍼브숍 운영 매장이 가장 많은 롯데마트는 다음 달 초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월드컵점에 약 992㎡(약 300평) 규모 리퍼브숍을 신규 오픈하고 다양한 상품을 최대 7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롯데마트는 지난 3월에 부산점, 8월에 선부점을 오픈하는 등 올해에만 리퍼브숍 3곳을 신규 오픈한다. 홈플러스에 입점한 리퍼브숍 브랜드 어썸마켓은 올해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출시했다. 이마트는 매장 내 리퍼브숍에서 가구뿐 아니라 세제, 제지, 주방용품 등 다양한 상품군을 전시하고 고객들이 마치 보물찾기 하듯 ‘가성비’ 상품을 찾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도록 제품을 비치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고물가와 함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친환경적 소비, 지속 가능한 소비 등으로 소비 가치가 옮겨가고 있는 점도 리퍼브 상품 인기의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당연히 고물가의 영향도 있겠지만,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소비 가치가 변화하고 있는 점도 리퍼브 상품 인기의 주된 요인"이라며 "기성세대가 물건을 ‘소유’의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오늘날 젊은 세대는 물건을 ‘사용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특별히 사용하는데 불편하지 않은 이상 리퍼브 상품을 ‘헌 것’이 아닌 오히려 합리적인 소비로 여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