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먹거리 가격을 잡기 위해 바나나를 비롯한 수입산 과일과 농축산물 등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지만, 효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특히 수입-유통 경쟁 환경을 면밀히 반영하지 않은 품목 선정으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할당관세는 특정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일정 기간 한시적으로 낮춰 주는 제도다.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7일부터 10개 수입과일과 식품원료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바나나(3만톤), 망고(1300톤), 자몽(2000톤) 등이 대표적인 관세 인하 품목이다. 바나나에 대한 기존 관세는 30%였는데 올해 말까지 3만톤 수입분에 한해 0%의 관세가 적용된다. 망고와 자몽도 각각 1300톤, 2000톤 분량에 기존 30%의 세금을 0%로 깎아준다. 널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수입품 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 줘 먹거리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입 과일 같은 품목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가 물가 인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내 수입 과일 시장은 소수의 업체가 상품을 수입해 유통하는 경쟁 제한적 환경에 가까운데, 이런 환경에서는 업체들의 가격 인하 유인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경쟁제한적인 시장에서는 정부가 관세를 인하해줘도 업체들이 소비자 가격을 인하할 유인이 크지 않다”며 “관세 혜택이 물가는 떨어뜨리지 못하고 소수의 유통업체들에 시민의 세금이 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기 때문에 시장 환경을 면밀히 고려한 품목 선별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수입 과일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바나나 시장은 ‘델몬트’와 ‘돌’ 같은 대형 수입업체 중심의 경쟁제한적 환경으로 꼽힌다. 망고나 자몽 시장도 비슷하다. 대형 업체 중심의 시장은 아니지만 소수의 수입업체가 수입 물량을 결정하는 경쟁이 활발하지 않은 구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수입 과일 시장은 주요 메이저 업체들이 환율과 국내 수요를 고려해 수입물량을 좌지우지하는 곳으로 봐야 한다”며 “소규모 업체들도 존재하지만 가격 결정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소수의 업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장인 터라 수출 상대국 업체들의 작황 상황 등에 따른 반응도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수출국에서 국내의 할당관세 인하 조치를 알고 미리 가격을 올려 수입 비용 부담이 그대로인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국내 과일 물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사과는 이상기온 등 여파로 전년 동월 대비 72.4% 상승하는 등 과일 가격이 크게 올랐다. 기재부 관계자는 “태풍 등으로 국내 과일 가격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는 수입 과일 가격이 조금이라도 낮아지면 국내 과일 수요가 분산돼 가격이 안정화되는 연쇄적인 효과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 인하 조치가) 일부는 수입업자 이익으로 귀속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일부는 소비자 가격 인하로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관세 인하로 수입 업체의 물량 수입 부담이 낮아지는 데 따른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할당 관세 적용이 과일 가격 하락까지 끌어내진 못해도, 더 가파른 상승세만큼은 견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주영 농업관측센터 연구원은 “수입해 오는 지역의 작황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업체들의 관세 부담이 줄면, 수입 물량을 줄여야 하는 유인도 줄어들어 가격 인상을 견제할 수 있다”고 알렸다. 12월에 페루에서 주로 수입해오는 망고는 현지 작황 사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물량 수입 축소로 관세 인하에도 과일 가격이 인상될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할당관세 적용으로 가격이 크게 뛰는 흐름은 막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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