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과 달리 은퇴 이후에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노년층들이 많습니다. 10년간 연평균 10% 넘는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퇴직연금 '401K' 덕분인데요. 401K가 생계에 큰 버팀목이 되면서 미국의 은퇴자들은 노년에 휴양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에는 퇴직연금에 100만달러 이상의 잔액을 보유한 이른바 연금 백만장자들도 35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채권금리의 변화로 401K의 수익률에도 심상치 않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401K는 지난해 약 15%의 손실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탐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간 승승장구했던 401K가 어떤 이유로 저조한 성과를 기록하게 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401K는 한국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유사한 연금상품입니다. 근로자와 고용주가 일정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누리며 퇴직 계좌에 매달 일정액의 연금을 적립하고 근로자가 이를 직접 운용해 수익을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되면서 디폴트 옵션이 시행돼 별도의 의사를 표하지 않은 근로자들의 경우 고용주인 기업이 사전에 정해둔 방식으로 퇴직금이 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용주들은 대개 근로자의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정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를 기본 옵션으로 제공합니다. 디폴트 옵션에 따라 별도의 의사 표시가 없는 근로자의 퇴직연금은 기업이 선택한 자산운용사(수탁자)를 통해 해당 상품으로 자동 운용됩니다.
TDF는 투자자가 고려한 은퇴 시기가 가까워지면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 비중을 줄이고 채권 등 안전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생애주기에 따라 자동으로 자산을 배분해 주는 펀드입니다. 포트폴리오 비중에 따라 주식과 채권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둘지가 갈립니다. 운용사들은 근로자 의사 표시가 없으면 연금 수령자의 은퇴 나이를 65세로 가정하고 TDF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고 합니다.
TDF는 주식의 높은 수익성과 채권의 안정성을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최적의 수익률을 달성해 왔습니다. 또한 통상 주식과 채권의 가격은 상반관계로 움직이기에 어느 한 자산이 떨어져도 다른 자산이 오르면서 수익률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자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의 채권가격과 주식이 동반 하락하면서 수익률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2022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21%까지 치솟으면서 국채가격이 하락했습니다. 동시에 S&P500지수도 19% 하락했습니다. 이에 주식과 채권을 50대 50으로 분배한 포트폴리오는 15.5%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채권 금리 상승세는 올해까지 지속되며 수익률 둔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S&P500은 올해 17.56% 오르며 반등했지만 국채 금리는 지난달 5%를 돌파하는 등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국채가격 하락이 가속화됐습니다. S&P500의 반등에도 채권에 투자한 자산이 큰 폭으로 줄면서 50대 50 포트폴리오는 연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7.9% 수익률을 올리는 데 그쳤습니다. 주식에 60%, 10년물 국채에 40%를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도 지난해 17%의 손실률을 기록하며 1937년 이후 가장 저조한 성과를 냈습니다. 올해 들어 해당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6.7%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S&P500의 수익률에 한참 못 미치는 성과를 낸 것입니다.
TDF 펀드로 연금을 굴리던 근로자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습니다. 통상 TDF는 은퇴 시기가 다가올수록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채권 등 안전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근로자일수록 더 큰 손실을 보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에 근로자들은 주식 계좌와 401K에서 돈을 인출해 다른 상품에 투자하는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뱅가드에 따르면 지난해 401K로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투자자의 11%가 자산을 인출해 다른 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새로 발행한 국채 등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국채금리가 4%대를 넘어선 만큼 이곳에 투자할 경우 기존 보유 채권보다 더 높은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401K 계좌에서 주식 비중을 높이거나 자산을 인출해 새롭게 발행된 채권에 투자할 경우 그다지 높은 이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TDF를 통해 자산을 운용한 투자자들은 연평균 0.46%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주식과 지방채 등 다양한 펀드에 분산 투자한 투자자들은 연간 1.7%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기존에 TDF 펀드를 통해 보유하던 채권을 매각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향후에도 현재와 같은 고금리 고물가 기조가 지속될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주식이 하락할 경우 손실을 만회할 장치를 만들어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들은 이런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기 어렵기에 현재와 같은 시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펀드에 돈을 묶어두기를 전문가들은 거듭 강조합니다.
하지만 은퇴자들 입장에서는 자산 가치가 쪼그라드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 것입니다.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과연 가만히 있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방법일지 아니면 새롭게 투자처를 물색해야 할지 투자자들의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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